since.2000.09.07

오늘 또 기사에 올라온 어느 학폭 가해자 배우가 올린 사과문에 적힌 ‘어린 날 아무 생각없이 행했던 말과 행동이 상대방에게는 오랜 상처로 남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는 문구를 보며 ‘과연 저 사람이 이 나이에 새삼 정말로 깨달았을까?’ 하는 조금은 비웃음 섞은 의심과 함께 요근래 내내 머리를 맴돌던 생각들을 그냥 넘기자니 도무지 떨쳐지지 않아 정리 삼아 끄적여보자면…

린양이 6학년 학기 초에 한 아이에게 물리적인 게 아닌 정신적으로 피곤하게 하는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었다.(겪어보니 차라리 치고 받으면 증거라도 남는데 이런 건 녹취를 하지 않는 다음에야 증명하기도 더 까다롭다)

새삼 앞뒤 사연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도 불쾌하고(그래서 나는 얼마전에 결국 자신이 피해자임을 인정한 여배우가 어떤 마음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걸 미루었는지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당한 사람은 보통 다시 그 일을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다) 당시에 주변에 상대방이 어떤 아이인가 좀 물어보니 이미 그런 면으로 유명한데 ‘엄마만 그걸 모르는 아이’로도 유명하다길래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에 린양이 그 날은 그 아이가 등 뒤에서 들으라는 듯이 ‘머리를 뽑아버리고 싶다’고 했다고 했고, 더 미룰 것도 없겠다 싶어서 바로 담임 선생님과 상담 예약을 잡고 일부러 옆사람까지 시간을 비워서 부부가 함께 찾아갔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장점도 단점도 많았던 6학년 담임 선생님의 장점 중 하나가 과하다 싶을만큼 ‘아이들의 교우 관계 정리’에 날을 세우는 분이었고(한 해를 무탈하게 넘기고 싶으신데 6학년 여자아이들이 한참 그런 문제가 많은 시기라는 데에 긴장감이 크셨던 듯) 앞뒤 이야기를 자세히 풀기도 전에 이미 선생님은 그 아이를 주시하고 있었다고 말씀하시며 이후로 둘의 물리적 거리를 가능한 한 띄워주겠다고, 그리고 우리에게도 ‘부모님께서도 혜린이에게 굳이 그 아이와 잘 지내야한다고 말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 후에 선생님이 린양을 다른 무리에 들어가 지내도록 신경써주셔서 걱정했던 것보다 빠르게 수습이 된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 린양 말을 들어보면 상대방 아이가 자기 무리 안에서도 너무 말이 안되게 제멋대로라서 린양에게 지나가는 말로 ‘걔도 언젠가 그 무리에서 힘든 날이 올지도 몰라’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2학기 중반이 넘어서였던가, 어느 날 린양이 나한테 ‘정말로 엄마 말대로 됐어’ 라길래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갑자기 그 아이가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린양에게 ‘자기네 무리와 자기가 안 맞는 거 같다,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끊임없이 카톡으로 메시지를 보낸단다.

린양이나 나나 그걸 보며 자기가 상대방에게 한 행동들이 잘못인지 정말 하나도 모르는구나, 혀를 찼던 기억이 있어서 요즘 연일 터지는 연예인 학폭 기사의 가해자가 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상처일 줄 몰랐다’라는 말, 서슴없이 피해자인 상대방에게 ‘직접 입장을 밝혀달라’는 태도는 따로 믿는 구석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놀랍지만 정말로 본인에게는 아무 거리낌이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라는 걸 이제는 알고 있기에 한층 씁쓸하다. 옆사람의 말을 빌자면 그들에게 그건 그저 ‘교우관계’였던 거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주변에 누군가 교우관계가 힘들어서 학교를 도중에 그만뒀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래도 학교는 다녀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아이를 낳고 학교에 보내보니 주변의 도움도 없고 상황이 나아지지도 않고 계속 괴로워야한다면 학교가 그렇게 괴로우면서까지 다녀야 할 곳은 아니지 않나 싶다.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사이에 내가 가장 바뀐 건, 사소한 일에 굳이 선생님을 귀찮게 하지 않는 소위 ‘상식있는 부모’가 되고 싶은 마음에 아이가 친구 때문에 힘든 일이 있을 때 어필을 주저하던 것이 없어졌고 주변에도 누군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보면 지금은 당연히 선생님한테 먼저 가라고 이야기한다.(막상 만나보면 대부분의 선생님들도 일이 커지기 전에 본인 선에서 수습하는 걸 선호하는 편이기도 함) 그리고 이 사안이 우리집에 얼마나 중요한지 어필하기 위해서라도 가능하면 부모가 함께 가라고 하는 편. 😑

초등학교까지는 이런 조율이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중고등학교 가면 부모가 어떻게 할 수 있는 폭도 좁아진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워낙 많이 들어서, 일어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일이겠지만 만약에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학교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는 마음가짐을 지금은 늘 한켠에 품고 있다.

간간히 어릴 때 일로 이제와서 너무 모든 걸 빼앗는 게 아니냐는, 가해자를 감싸는 이야기를 들으면 불쑥 화가 올라온다.
왜 이제와서 그러냐고 하겠지만 사람들이 그나마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흐름상 지금이라고 생각했을 테고 피해를 호소한 사람들은 정말 ‘어지간해서’는 시간이 지나도 극복할 수 없었던 거다.

연일 시끄러운 기사들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피로할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피해입은 사람들의 ‘구체적인’ 이야기가 많이 드러나야 지금도 등 뒤에서 ‘말’만 했을 뿐 ‘정말 머리채를 잡은’ 게 아니니 나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지금의 자신의 행동이 미래의 자신이 가진 걸 위협할 수 있다는 산교육이 되지 않을까 싶다.(그리고 한편으로는 이틈을 타서 허위 사실을 유포해 진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희석하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단호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본다. 😑)

아이들이 진심이든 아니든, 차라리 ‘나중에 인생 망치기 싫어서’라도 상대방에게 좀더 정중해야한다는 걸 배워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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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responses

  1. 정말 그게 잘못인지 전혀 모르고 있는 경우도 있고, 알면서 그러는 경우도 있더군요 =ㅁ=;;

    어릴적의 잘못으로 인생을… 어쩌고 하는 소리는 정말 사람 속 뒤집는게 그 어릴 적에 당한 아이들은 평생의 트라우마가 되기도 하고 문제가 되기도 하는데 참 속 편하게 말한다 싶더라고요.

    조금 다른 경우가 될 지 모르겠지만, 장난삼아 괴롭힌다.라는게 어느정도 권력(이랄것도 없는 자잘한 레벨이지만)을 갖게 되는 군생활에서 어떤식으로 튀어나오는가 보면 이건 정말…=ㅁ= 장난삼아 한 건데 그렇게 힘들어 할 줄 몰랐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 라는 것도 뭔 패턴처럼 보다보니 진심으로 사과한다. 반성한다.라는게 과연 말만으로 되는것인가? 라는 생각도 들고 그랬습니다.(이쪽은 나름 성인의 경우인데도)

    좋아하는 스포츠인 야구에서도 매번 터지는 일인데, 정말 이럴경우 나중에 프로가 되었다가 싹 말아먹는다는 경우를 좀 자주 만들어서 학창시절에 미래를 뭉개버리는 일이 없도록(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하는게 좋지 않나…라는 생각이 자주 들더군요.

    1. Ritz

      저런 류의 심리적인 괴롭힘은, 애가 학교에서 어떤 모습인지까지 잘 알 수가 없으니 가해자 부모도 문제가 정말 커지기 전까지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더라고요.(자기 아이가 피해자가 아니면 은근 외면하는 부모도 보긴 했지만)
      저런 괴롭힘이 제때 해결되지 못하고 가해자는 배운 것 없이, 피해자는 상처만 남은 채로 지나가는 경우가 지금까지도 너무 많았을 것 같아서 이렇게 방송에서라도 계속 시끄럽게 이슈화하는 게 어떤 면에서는 반가울 정도예요. -_- 뒤통수에 대고 들으라고 말하던 애들이 하나라도 줄지 않았겠어요.

  2. 그런 일이 있었구먼. 잘 이겨내 줘서 다행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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