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불사인 중 가장 무서운 이야기는 ‘걸리버 여행기’였다.
거기에는 늙어가는 불사인에 대해 나오는데 ‘불로’가 빠진 영원한 삶이란 얼마나 무서웠던지 고등학교 때 그 책을 읽은 후로는 내심 그런 소원을 빌어야 할 일이 생긴다면 ‘불로’라는 말을 절대 빼먹지 말자는 다짐을 했었다.(물론 지금의 나는 누군가가 그런 제안을 한다 해도 거절하지 않을까 싶다)
영화 ‘올드 가드’에 나왔던 통증을 느끼지만 죽지는 않는 불로불사인,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괴로워하는 불로불사인에 대한 편견을 깨버린 샌드맨에 나왔던 홉 개들링, ‘바카노’에 나왔던 마이저 등 당장 생각나는 인물만 서넛이 넘는 걸 보면 인간에게 ‘불멸’이란 참으로 매력적인, ‘만약 가지게 된다면’을 가정할 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소재인 모양이다.
이번에도 불로불사에 대한 이야기.
불멸을 얻으면서 인간으로서 최소한 가져야 할 모험심을 잃어버렸다는 거예요.
p208
그러나 이번의 불로불사는 한 몸으로 쭉 살아간다기보다는 죽었을 때 그 순간부터 기억을 완벽히 전달해 새로운 몸으로 살아가는 방법이다. 여기에 자본주의의 현실이 적당히 어우러져 이것은 보험을 통해 실행되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보험을 선택한 삶을 살며 보험금에 허덕인다.
대학 때 과학철학 시간의 주제 중 하나가 ‘인간의 뇌를 완전히 컴퓨터에 백업한다고 했을 때 그 개체는 그 전과 같은 인간이라고 볼 수 있는가’ 여서 그에 대해 생각을 길게 해본 적이 있었는데(무려 학기말 레포트는 소설이었다. 그러고보니 불로불사로 나도 썼었네. orz) 그때도 지금도 나의 결론은 그래도 인간이 가진 무게를 가늠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리라 믿는 고유의 영혼의 존재 때문에 백업한 뇌는 동일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 작품 속 주인공(은 불로불사라기보다 사이보그라서) 외의 모든 인간은 내 눈에는 ‘이미 죽은 사람들의 백업이 유령처럼 돌아다니는 세계’인 점도 흥미로웠다.
모든 사람이 불로불사가 되어 더 이상 아이도 낳지 않는 세상, 그리고 그 세계에 불쑥 등장한 ‘아이’와 그 아이를 지키며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면서도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이 기다리는 끝은 무엇일지 궁금해서 책을 잡고는 결국 단숨에 읽어내렸다. 초, 중반에 비해 후반이 좀 아쉽긴 했지만 액션이 풍부한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기분좋게 볼 만한 한 권이었다.
+이 책을 보기 전에 보다가 결국 놓은 책이 마찬가지로 한국을 베이스로 삼은, 미국계 한국인 작가의 SF였는데 끝까지 다 못본 이유가 작가가 고민해서 작품 전체에 한국적인 요소들이 오히려 한국인인 나에게는 오히려 몰입을 방해해서였다.
주인공의 이름이 제비, 언니 이름은 봉숭아, 친구의 이름은 학이었고 배경은 일제 강점기를 모티브로 삼은 상황이었는데 당연히 그 배경을 모르는 독자들도 감안해서 일일이 ‘이게 일본을 모델로 삼은 나라’, ‘이게 한국을 모델로 삼은 나라’ 그리고 그 지배를 받는 상황에 대해 설정을 너무 길게 풀어서 나는 오히려 읽는 내내 바뀐 이름 때문에 헷갈릴 지경.
이 책에 등장하는 ‘피맛골을 지배하고 있는 조직인 재건축조합‘이라는 문장이 나에게는 훨씬 현실적으로 다가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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