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라인을 보다가 우연히 어떤 분이 독일인에게 원서를 선물받았는데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며 누가 한국에서 올 때 자신에게 번역서를 사다달라는 이야기가 흘러갔는데 제목을 보니 재미있어 보여서 빌렸다.
근데 다 읽고 나니 내용 중에 저자인 독일인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부리면서 손찌검하는 내용이 꽤 있었는데 그걸 선물하다니 좀 그러네, 라는 게 내 감상. 🤔
자신의 나라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에 관심이 있었다는 걸 어필하고 싶었던 걸까.
아무튼.
저자인 루돌프 차벨은 독일 신문사 특파원으로 중국 현지에서 ‘의화단사건’을 취재한 바 있으며 광둥·즈리(直隷)·만주·산둥·모로코에 이어 여섯 번째 원정 여행지는 한국이 되었다.
한국을 오려고 왔던 게 아니라 러일 전쟁을 취재하러 일본 쪽으로 들어가 종군 기자 신청을 했는데 상황이 계속 여의치 않게 흘러갔고 어떻게든 움직여봐야겠다는 생각에 한국을 관통해 위로 올라갈 생각을 했던 것.
무려 이게 <신혼여행>이었다.
읽는 내내 글쓴이의 부인이 너무… 대단했다. 나 같으면 신혼여행인지 지옥길인지 모를 이 여정의 도중에 나가떨어졌을 듯.
어쨌거나 이 시기에 우리나라를 찾았던 외국인의 책과의 차별점 역시 <신혼여행기>라는 점이었다.
혼자 다니기에도 버거운 여행길을 부인을 꽤 살뜰히 챙기며 나아가는 모습이 풋풋하고 남아있는 사진들을 보면 부인 쪽도 나름 씩씩하고 즐겁게 보냈던 모양.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지 뭐…
접이식 침대와 모기장을 만들어 이고지고 다니는 걸 보며 왠지 독일인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 도중 촬영한 100여 컷의 사진들도 함께 실려 있는데 생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어릴 적까지도 시골에 가면 느낄 수 있었던 어떤 정서가 남아 있는 점이 흥미로웠다.
일본인의 공손함이란 늘 미묘한 사안이었다. 일본인은 굳이 필요를 못 느낄 경우, 특히 자신보다 아래여서 무시해도 좋다고 판단된 이방인에 대해서는 무례하기로 첫째가는 사람들이었다. 한국인들에게는 아직도 훌륭한 중국식 교육의 흔적이 엿보였다. 형식적으로 굽실대는 일본인의 공손함에 비하면 중국에서 접하는 공손함이란 훨씬 진솔했다.
p.191
(칭찬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한국인의 생활은 바로 이 툇마루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여기서 직공들이 일을 했고, 장사꾼들은 물건을 펼쳐 보였으며, 주인 남정네는 쭉 뻗고 누워서 말총으로 높이 엮은 검정 모자를 얼굴에 덮은 채로 잠을 잤다. 잠자는 것은 그야말로 한국인의 중요한 취미 생활이었다.
p.196
한국인들은 거래에서 매우 좀스럽기로 유명했다. 말은 많은 데다 몇 푼을 두고 맹수처럼 싸웠고, 엽전 세 닢을 받아내기 위해 기꺼이 사흘을 허비했다. 하지만 사흘 뒤 세 닢을 얻지 못해도 개의치 않는 이들이 또 한국인이었다. 이들은 지극히 신뢰하기가 어려웠다. 그 생활신조가 다름 아닌 ‘되도록 돈은 많이, 일은 적게, 말은 많게, 담배도 많이, 잠은 오래’ 였다.
p.241
‘가’라는 그 짧은 단어는, 통역이 독일어를 몰랐기 때문에 우리가 급히 익힌 몇 가지 주요 한국어 단어 중 하나였다. 가는 독일어 ‘gehi’에 해당하는 말로, 강조할 때는 “가, 가” 하고 두 번을 외쳤다. 비록 짐꾼들이 쓰는 속된 말이었지만 그들이 알아듣게 하려면 그들의 말을 빌려 쓸 도리밖에 없었던 것이다. 만일 내가 “가” 하고 말할 때마다, 아니 한 발짝 양보해서 “가, 가” 하고 외칠 때마다 한국 엽전을 한 닢씩 받았더라면, 아마 이 보잘것없는 돈을 갖고서도 어마어마한 재산을 모았으리라.
p.290
한국의 남정네들이란 본디 유유자적한 삶을 즐기는 작자들 같았다. 일도 집안 여자들 손에 맡겨 버리기가 일쑤였다. 다만 농부들에게는 도회지 사람들만큼 심한 나태함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p.398
그러나 분명한 건 이곳 농촌에서조차 여자들이 일을 도맡다시피 한다는 사실이다.
바보 짓의 선수인 통역 감오이스텐kam oi sten 씨는 지난 사흘간의 행군 중 통역으로서 낙제라는 사실을 여지없이 증명해 보였다. 할 줄 아는 영어라고는 예스와 노, 기타 여섯 단어가 전부였다. 게다가 말과 당나귀를 몰 줄 모른다는 사실도 탄로났다. (중략)
그런데 오늘 도를 넘어선 일이 벌어졌으니 명색이 통역이라는 자가 숙식비를 정산할 때 우리를 속여 돈을 가로채려 한 것이다.
p.363
어디 내놔도 부끄러운 이 조상님의 진짜 이름은 뭐였을까. 블스에서는 ‘감외철’, ‘감의철’, ‘강위천’까지 나왔지만 정답은 확인할 길이 없다. 🤨
지명도 인물 이름도 독일어로 표기하다보니 번역자도 고생이 많았는지 최대한 조사는 했으나 자신이 없다는 코멘트가 따로 붙어 있었다. 저 감오이스텐만 봐도…😑
구한말의 외국인들이 쓴 한국 이야기가 보이면 대부분 손에 잡는 편인데, 이방인의 눈으로 본 모습이라 다소의 편견과 그네들의 우월감이 불편하지만 그럼에도 양반도 왕도 아닌 진짜 ’우리네‘의 과거에 대해 알아야만 할 것 같아서 지나치지 못하겠다.
왕조의 기록은 남아있지만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의 일상에 대해서는 남아 있는 게 별로 없다보니 무의식중에 학교에서 역사시간에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자신이 양반네들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게 나는 좀 별로다.
어쨌거나 이 작가는 전선에 좀더 다가가기 위해 떠난 여행길이었으나 정작 전쟁터까지는 가지 못한 채 건강이 상해서 귀국해서 러일 전쟁의 기록은 남기지 못했지만 1904년의 한국에 대한 기록은 오롯이 남았다.
세상 일은 이렇게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독일 위키에 작가 루돌프 차벨 항목이 있어서 읽어보니 이때 이렇게 생고생하며 신혼여행도 갔다와서 애 둘 낳고 살다가 첫번째 부인과는 헤어진 건지 사별한 건지, 두 번째 결혼에서는 멕시코로 갔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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