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험지옥에 빠지다

보통 역사에 관한 책을 읽을 때

과거를 알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가늠할 수 있다.

는 이유를 드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할 수 있는 생각은

과거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고 미래 따위 없지

과거에도 그랬도 현재도 그렇고 미래에도 우리나라는 입시라는 구렁텅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그리고 조선은 망했지만 지금은 아예 사람들이 아이를 낳기를 포기했으니 그냥 나라가 사라지는 엔딩일지도.

특히 공부 잘했던 아버지와 공부 못하는 아들의 조합은 최악이었다. 직접 가르치자니 열받고, 그렇다고 모르는 체하자니 속이 터 지는 것이 그들 부모의 마음이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돈이었다. 좋은 선생을 모셔 오자. 얼마를 원하든 주겠다. 내 아들을 똑바로 가르쳐다오! 이런 부모들 덕분에 조선의 사교육 시장은 불황을 몰랐다. 마치 오늘날처럼 말이다

(조선이라는 말은 빼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듯)

그리하여 5일 뒤인 30일에 성균관에서 별시를 열기로 했다. 그러면서 이는 지방의 선비들을 위한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그런데 이때도 통제가 잘되지 않았다. 한양의 선비들이 지방 출신이라고 거짓말하고는 과거를 봐 급제했던 것이다. 지금도 자녀가 좋은 학군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위장 전입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50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역사의 무한 반복.

지금 반드시 나라를 망칠 것은 과거인 것입니다.
_<순조실록>, 1809년(순조 9년) 11월 16일

세도정치가 본격화되며 조선이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순조 때의 좌의정인 김재찬의 말이다.

이때도 알고 있었고 지금도 알고 있지만 21세기가 되어서도 변하는 건 없다.

지난 2019년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 모든 문과 급제자의 삶을 연구했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조선에서 높은 벼슬을 얻으려면 과거 성적보다도 가문이 중요했다. 여기에 더해 친가나 외가 어른 중에 고관이 있(었)다면 출셋길이 더 활짝 열렸다. 너무나 현실적인 결과라 씁쓸하기까지 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출세 하려면 밀어주고 끌어주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런 백이 없는 사람이라면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소외될 수밖에 없다.

흔히들 조선의 과거제도에 대해 ‘그래도 능력을 가진 사람이 타고 오를 사다리가 되어줬다’ 운운하지만 그 역할을 미미했고,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이 책은 내로라 하는 위인들도 자식농사에는 묘안이 없었다는 이야기에서 씁쓸하지만 위안을 얻고 너무나 당당하게 ‘실력보다 가문을 먼저 본다’고 말하는 인간들에 환멸했다.

우리가 기존에 알던 것과는 조금은 다른 방향의 위인들 이야기라는 면에서는 흥미진진해서 어쨌거나 재미있게 읽은 한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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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룬그리져 Avatar
    룬그리져

    이거 뭐 그냥 현재 이야기 아닌…..가요;;;

    [좋은 선생을 모셔 오자. 얼마를 원하든 주겠다. 내 아들을 똑바로 가르쳐다오!]

    과거를 쉽게 받기 위해 자식을 가르쳐서 고치는 방법을 우리는 수과이개술[受科利改術]이라고 하여…

    1. Ritsko Avatar
      Ritsko

      수과이개술이 뭔가 잠시 당황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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