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얼마 전 집 앞 도서관이 보낸, 신청했던 희망도서가 도착했으니 찾아가라는 알림을 받았는데 제목을 보고 ‘내가 이걸 언제?’ 라고 잠시 당황했다가 기억을 되짚어보니 트위터에서

이 글을 스치듯이 보고 바로 사이트에 신청을 넣은 다음 잊어버렸었나보다…;

받고보니 두께가 제법 돼서 손이 선뜻 잘 안 가 그 사이에 다른 책들을 먼저 집었다가 반납 알림 메시지를 받고서야 그래도 내가 신청해서 도서관에서 구매한 건데 읽기는 해야지 라는 책임감에 일단 반납일을 연장하고 주말에 손에 잡았는데 내용이 너무나 기이(?)해서 이틀동안 정신없이 읽어내렸다.

한 가족이 있다.
아버지는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학생들에게는 존경받는 스승이자 학계에서는 미래가 기대되는 유망주, 어머니 또한 같은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는 재원이다. 이 부부의 두 아이는 부모의 든든한 지원과 넘치는 사랑을 받으며 해맑게 자란다.

그러나 이 집에는 독특한 사정이 있는데, 아버지가 한번씩 아무런 말도 없이 사라진 후 어느 날 홀연히 돌아오는 것이다. 그 기간이 몇 달이 될 때도 있고 1년이 될 때도 있다.
아들은 아버지가 사라질 때마다 언제 돌아올지, 돌아오기는 하는지 불안해하지만 왠지 엄마에게 자세히 물어보지 못했고, 어느날 큰 용기를 내서 물어보니 엄마는 그저 ‘쉬러 가셨다’는 대답만을 할 뿐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작가가 스무살이 넘어서야 아버지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아버지는 십대 후반 파시스트들에게서 자유세계를 구해내겠다며 지붕에서 알몸으로 뛰어내린 첫 번째 조증 삽화 이후, 결혼 생활 내내 망상과 환각으로 사라질 때마다 정신병원에 여러 차례 입원해야 했던 것이다. 어머니는 남편의 모든 정신 발작과 입원과 부재를 누구에게도(자신의 어머니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오롯이 홀로 견뎌냈는데…

아버지의 첫번째 고백 이후 부자간의 대화는 24년간 이어졌고, 그 이야기를 정리해서 세상에 내놓기까지는 다시 22년이 걸렸다. 심리학자의 길을 선택한 작가조차도 세상의 낙인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그것을 극복하는 데에 긴 시간이 필요했을 만큼 세상의 편견은 두텁고 단단했다.

나는 앞으로의 글을 통해 그 어떤 정신질환보다 그에 따르는 낙인이 더욱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 ‘또 다른 광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려 애쓸 것이다. 낙인은 인간이 지닌 가능성을 부정하게 만든다. 이제 솔직한 대화가 침묵과 수치심의 자리를 대신해야 한다.

p.10

양극성장애로, 일상생활을 하다가도 어느 날 모든 걸 접고 정신병원에 들어가야 하는 아버지. 그리고 그런 아버지에게서 일정 부분을 물려받은 것이 분명한 작가가 평생 긴장 속에서 정신을 꽉 잡고 버티는 이야기도 구구절절했지만 나는 그 모든 상황을 한 몸에 지고 그 가정을 지켜낸 작가의 엄마에게 계속 눈이 갔다.

침묵의 1950년대에 주기적으로 광증을 겪은 남자의 아내로서, 어머니는 하루하루를 명예 낙인의 심연 속에서 살아갔다. 정신의학 전문가들은 어머니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어머니의 통찰력도 웃어넘겼다. 게다가 그 당시 선택 가능했던 정신건강 조치들은 가족 부양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어머니로서는 누가 이 사실을 알아차린다면 우리 가족이 ‘도덕적 결함’을 지닌 최악의 부적격자들이라며 따돌림당할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확보한 사회적 지위도 모두 사라질 게 분명했다.

p.188

이 가정이 마지막까지 존재하고 작가와 여동생이 무사히 성공한 사회인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은 이혼을 고민하면서도 결국 남편과 아이들을 챙긴 엄마의 피눈물나는 노력이었다. 아이들이 모두 성인이 되고 난 후 자가면역질환인 류머티즘이 덮쳐와 노년까지 고생을 했다는데 그건 아마 내내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긴장이 어느 정도 느슨해지면서 생긴 일이 아닐까.
그만큼 그녀가 지낸 시간은 무섭게 고독하고 짓눌려 있었을 테고 결국에 남편은 모든 이야기를 그녀가 아닌 아들에게 털어놓았다는 점에 너무나 허탈했을 것 같다.

인류는 시대와 문화를 불문하고 신체 기형이나 장애, 나병 등의 질환, 인종이나 종교에서의 소수자성, 이성애를 제외한 모든 종류의 성적 지향, 입양이나 정신장애 등 다양한 속성에 ‘정상이 아니’라는 낙인을 찍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지 않는 숨겨진 낙인은 더욱 골치 아픈 것이었는데, 이를 지닌 개인이 그 특성이 ‘노출’될까 봐 전전긍긍하며 모든 사회적 접촉에서 몇 겹의 갈등과 불안을 겪게 되기 때문이다.

p.59

긴 시간을 들인 만큼 차곡차곡 쌓여가는 이야기로 잘 짜여진 책.

읽는 내내 나부터라도 편견에 휘말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수시로 나 자신을 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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