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초등학교 6학년 때쯤 집에 있던 전집 중 한권이었던 ‘천년 묵은 여우’라는 책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이게 거의 처음으로 읽은 판타지 장르 소설이었던 것 같다.
학교에 가서도 이 책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한참 듣던 미국에서 온 친구 하나가 자기가 아는 책인 것 같다며 이런저런 내용 아니냐고 물어보는데 맞춰보니 같은 책이더란. 심지어 내가 읽은 건 시리즈 중 뜬금없이 세 번째였다. -_-;(어쩐지 설정들이 너무 설명없이 나오긴 했지) 작가가 76년 뉴베리 상을 받은 게 이 ‘그레이 킹’이었는데 아마 기획자가 시리즈물인지는 모르고 수상작이라 전집에 끼워넣은 듯.

내가 앞권 내용들을 너무 궁금해하니 그 친구는 본인이 가진 원서라도 빌려주고 싶어했지만 요즘에야 그 나이 아이들이 정말 궁금하면 그 정도 영어 소설(원래 5-6학년 정도 초등학생 대상의 작품이더란)을 어느 정도 소화할지 몰라도 당시에야 영어는 그야말로 낫놓고 ㄱ자도 모르니 그림의 떡. 그래도 정말 매니악한 그 책을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 전에도 그 뒤로도 이 책은 도대체 아는 사람이 없숴…)

그 뒤로 다른 판타지 소설들도 접하면서도 가끔 한번씩 궁금했던 게 그때 그 책의 앞 이야기였는데 지난번에 ‘벽 속에 숨은 마법 시계’를 읽고 갑자기 삘 받아서 검색해보니 우리나라에도 용케 이 시리즈 앞권들이 근근히 나왔었더란. 그리고 역시나 별 인기가 없었는지 마지막 권은 나오지 못했다. ㅠ.ㅠ(이것만은 내가 원서로 읽어야 하는가…)

위키피디아를 검색해보니 무려 1965년부터 1977년 사이에 완결된 오래된 작품.
순서는
Over Sea, Under Stone
The Dark Is Rising
Greenwitch
The Grey King
Silver on the Tree
로 친구가 가지고 있었던 묶음은 ‘어둠이 떠오른다’부터 시작해서 내가 읽었던 그레이 킹(천년묵은 여우)가 세번째라고 했던 모양.(우리나라에도 ‘어둠이 떠오른다’부터 출판했더란)

‘어둠이 떠오른다’를 시작점으로 잡으면 내용은 7번째 아들의 7번째 아들 윌 스탠튼이 11번째 생일에 자신이 어둠의 세력이 맞서야 할 ‘올드 원’이라는 걸 알게 되고 그 싸움에 필요한 표식들을 모아 어둠의 세력과 맞서싸운다.
전형적인 ‘선택받은 특별한 아이’의 모험에 대한 이야기.
그 다음 ‘녹색마녀’에서는 ‘바다 너머, 바위 아래’의 주인공이었던 아이들과 윌이 만나 함께 어둠에 맞서고 ‘그레이 킹’에서는 윌이 요양하기 위해 간 곳에서 만난 아서왕의 숨겨진 아들 브랜과 힘을 합친 후 마지막 ‘나무 위의 은’에서는 모두가 함께 모여 어둠과 마지막 대결을 펼치는 모양.(내는 김에 끝까지 내주지 ㅠ.ㅠ)

오래된 판타지 소설치고 특이한 건 주연인 소년소녀들의 ‘부모님이 대부분 건재하다'(!) 옛날 아이들용 영국, 미국 작품들은 왜 그렇게 고아들이 많은가. 빛과 어둠의 대결/아더왕 전설과 영국 민간 전설, 켈트 신화, 노르웨이 신화 등등이 뒤섞여 나름 아기자기한 작품.

낮에 가볍게 잡았다가 결국 두 권 내리 읽었더니 린양이 옆에서 보더니 한번에 다 읽느냐고 ‘재미있냐’고 물었는데 사실 나한테는 내가 린양 나이만할 때 궁금했던 걸 마흔이 넘어 결국 다시 손에 잡았다는 감흥이 더 컸다.
판타지 소설로 재미가 있냐고 물으면 이미 해리 포터 같은 작품을 접한 세대에게는 좀 싱거울 법하지만 분명한 건 70년대에 이미 이런 작품들이 있었으니 그걸 읽은 사람들에게서 해리 포터 같은 작품도 나왔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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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responses

  1. 예원맘

    엠마도 판타지 소설들을 참 좋아해서 좋아하겠다 싶어 물어봤더니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다 이미 읽은 책이더라구요. 전 판타지 소설들은 그닥 좋아하지 않았어서 이쪽 계역 책들은 거의 같이 읽은게 없는데 엄마가 딸이랑 독서 취향이 같은 것도 참 좋은 일인 듯해요.
    혜린이 the land of stories 는 읽었나요? 엠마가 2학년 때 읽기 시작해서 매년 신간 나올 때마다 꼬박꼬박 사서 모으며 읽고 또 읽는 시리즈예요. His dark materials는요? 리츠님은 판타지를 좋아하셨다니 이미 알고 계실 것 같지만 이건 엠마 읽을 책 찾아보다 저도 같이 읽었는데 재미나게 읽었었어요.

    1. Ritz

      이 책 읽은 동지가 있다고 들으니 왠지 많이 반가워요~ *.*

      제 욕심에 이것저것 권해보는데 서로 취향이 맞는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많고 그래요. ^^;
      저도 판타지 장르는 저 책 이후로 유명한 작품 말고는 그렇게 많이 본 건 아니라 말씀해주신 두 작품은 아직 못 읽어봤어요. the land of stories 시리즈는 집앞 도서관 검색해보니 다 갖다놓은 것 같아 혜린이한테 한번 권해볼게요~ His dark materials은 우리나라에서 황금나침반이라고 나와 있나본데 검색해보니 이건 제 취향일 것 같아 다음번에 강남역 나갈 때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사올까 합니다. *.* 추천 감사해요~ ^^/

  2. 오…하고 지수한테 읽혀볼까? 하다가 초5,6이라길래 킵해 두는걸로…ㅠㅠ 요즘 리당과의 전쟁이라 책읽히기가 쉽지 않네요…

    1. Ritz

      요즘은 세상에 재미있는 게 너~무 많아서 책을 읽게 만드는 것도 참 만만치 않아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