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오전에는 세 식구 모여 가볍게 ‘소셜 딜레마’를 보고, 혜린이가 뭔가 더 같이 보고 싶었는지 요즘 보건교사 안은영 이야기가 많더라며 틀었는데 모녀가 머리 맞대고 앉아 이게 무슨 내용인가, 당황하면서 한 화가 끝나면 어쨌거나 다음화가 궁금해져서 계속 넘기다보니 얼결에 하루만에 다 봐버렸다.

남과 다른 삶에 지쳐 있지만 그럼에도 팔자대로(?) 세상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성 히어로를 어쩜 이렇게 산뜻한 화면으로(그러나 안은영 본인은 한결같이 찌든 표정으로) 찍을 수 있을까.

호불호는 굉장히 쎄게 갈릴 작품이었는데 나와 혜린이는 호(好).
드라마를 보면서 서사나 설정의 디테일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보면서 도대체 어쩌라는 건가 싶을 수도 있을 것 같으나 나는 보는 내내 별다른 설명이 없는데도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점이 오히려 대단했다. 조금은 기괴한 텐션, 너무나 한국적이면서 일상과 멀지 않은, 그러나 밤하늘을 빛나는 고래가 흘러가고 슬픈 사연의 젤리들이 퍼져나가는 판타지를 충실하게 그려내서 좋았던 작품.

예전에 어딘가에서 ‘눈이 부시게’에서 연기하는 남주혁을 보며 누군지 연기 선생이 대단히 좋은 사람이 붙었는지 연기가 갑자기 확 늘었다고 평한 글을 본 적 있는데─내가 바로 전에 본 남주혁이 나오는 작품은 ‘안시성’이었는데 거기에서 연기가 너무… 굉장했었다…─ 이번 드라마에서 배우가 캐릭터에 어울리기도 하고 연기가 꽤 좋았다. 정유미야 그냥 안은영 그 자체였고.
학생들조차도 기존에 티비에서 자주 보는 인물들이 아니라 일부러 감독이 다양한 외모와 느낌으로 하나하나 공들여 배치한 게 아닐까 싶었다.

드라마 내내 울리는 “보건교사다~ 나는 안은영~” 노래가 너무 취향이라 찾아보니 이 드라마 음악은 (구)어어부밴드/(현)이날치의 장영규 작품이라는데 전우치 음악 작업도 했다는 걸 보니 며칠 전에 들은 ‘범 내려온다’와 전우치에서 유명한 곡 ‘궁중악사’, 안은영 안의 곡들이 한 큐에 이어지는 느낌.

혜린이는 원작 쪽 미리읽기를 찾아보더니 재미있을 것 같다길래 원작도 주문 예정. 드라마와 원작은 또 어떤 점이 다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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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responses

  1. 유희열 스케치북에 범내려온다가 나왔었죠.

    1. Ritz

      유희열의 스케치북 이번주 특집 너무 좋더라고요. 저는 이자람 정도만 알고 이날치 밴드도 얼마전에 처음 알았는데 국악을 기반으로 하는 대중음악 밴드나 팀이 그렇게 다양할지 생각도 못했어요.

  2. raoul

    범 내려온다~

    1. Ritz

      안은영에서는 범이 아니라 젤리가 잔뜩 내려오지요…. 그러고보니 오늘 들은 어류도감도 좋았어요. https://youtu.be/ew2jWwUrERk

  3. March Hare

    드라마는 안 봤지만 소설은 가볍게 읽기엔 좋았습니다. 비록 한 번 읽고 지인 줬지만…

    1. Ritz

      그러고보니 저는 포스터 화면이랑 설정 보고 당연히 웹툰이 원작일 줄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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