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여행갔다 오는 길에 비행기 안에서 다큐멘터리를 하나 틀었는데 ‘메리 포핀즈’의 작가 패멀라 린던 트래버스(Pamela Lyndon Travers)에 대한 이야기였다. 작가 다큐멘터리인데 중간에 뜬금없이 톰 행크스와 엠마 톰슨 인터뷰가 들어가 있어서 찾아보니 2013년에 개봉했던 영화 ‘세이빙 Mr.뱅크스’ 홍보용으로 만든 게 아니었나 싶다.

메리 포핀즈를 좋아하는데도 작가 이름은 따로 챙겨 본 기억이 없고 특별히 들은 이야기도 없었던 것 같아 궁금해서 골랐는데 보다보니 애초에 작가가 본인의 정보나 사생활이 알려지는 걸 극심하게 싫어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더란.

트래버스는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지인을 통해 아일랜드의 어느 가난한 집 남자 아이를 입양했는데, 입양을 하려고 갔더니 눈앞에 놓인 아이는 쌍둥이였고 그 집에서는 어차피 먹고살기도 힘드니 둘 다 데려갔으면 하는 눈치였던 모양.
점성술의 힘을 빌어(…) 심사숙고 끝에 한 명만 데려왔다는데 그걸 보는 순간 기분이 정말 애매했다.

패멀라 린던 트래버스와 아들 카밀루스 트래버스

한날 한시에 태어나 나란히 누워있던 쌍둥이가 누군가의 선택만으로 인생이 갈라져서 서로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게 될 텐데 선택받지 못한 쪽은 자신이 잡지 못한 그 기회에 대한 미련을 떨칠 수 있을까.
실제로 선택받지 못한 쪽의 인터뷰가 나오는데, 트래버스에 대해 ‘사람의 운명을 가지고 장난을 친 나쁜 사람’이라는 노골적인 비난과 원망이 섞여 있었다.

집에 와서도 간간히 이 쌍둥이 이야기가 생각났는데 트위터 타임라인을 훑다가 마침 쌍둥이에 대한 다큐 이야기가 눈에 들어와서 린양과 둘이 앉아 보기 시작했다.

제목은 ‘어느 일란성 세 쌍둥이의 재회’.

대학에 입학한 첫 날 학교 교정에 들어선 로버트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아는 사람인 양 친근하게 대하는 이상한 상황에 놓이고 자신과 똑같이 생긴 에디라는 사람이 작년에 이미 이 학교에 입학했다가 그 해에는 휴학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에디의 친구를 통해 에디와 연락을 해본 후 자신들이 각자 다른 집으로 입양된 쌍둥이였다는 걸 확인하고 재회하는데 이 사연은 당시 신문에 훈훈한 미담(?)으로 크게 실린다. 그리고 또 그들과 똑같은 얼굴을 한 누군가에게 연락이 오는데…
다 모이고 보니 세 쌍둥이였던 것.

다큐멘터리는 대략 1/3 지점까지는 훈훈하고 그 뒤 1/3은 상황이 반전되면서 착찹하다가 마지막에 다시 한번 뒤통수를 친다.
단순히 세 쌍둥이가 한번에 입양되기 힘들어 임의로 갈라놓은 것이 아니라 이들이 알고보니 어느 심리학자의 실험체였다는 점에서 나치와 다를 바 없는 상황에 경악하는데 마지막에 남은 반전까지 보고 나면 정말 악마가 왜 필요한가 싶다.

픽션으로 쓴 이야기라고 해도 불쾌할 법한데 이게 실화라는 점에서 다 보고 나면 뭐라 말할 수 없이 기분이 드럽고 그럼에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이 다큐에서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머리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요근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과 ‘타고난 기질’과 ‘부모의 양육’이 작용하는 비중이 얼마쯤 되는 걸까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게 되는데 요즘 들어 부쩍 결국 ‘타고나는 기질’이 80, ‘양육’이 20쯤 아닐까 하는 회의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그토록 잔인한 실험을 통해 이야기하는 건 결국 ‘기질을 극복하는 건 양육’이었고, 어찌 보면 나는 부모로서의 무게를 조금은 덜고 싶은 기분에 기질의 지분율을 믿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그리고 무의식중에 ‘어떤’ 사람으로 키우냐보다 어떻게 하면 ‘공부’ 잘 하는 아이가 될까에 기준을 두고 기질과 양육에 대해 이야기했던 건 아니었는지.
아이의 기질은 바꿀 수 없지만 그 기질의 단점도 장점도 본인이 잘 끌어안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고 조금은 외면하고 싶었던 ‘부모로서의 무게’는 한층 더 무겁게 나를 누른다.

이야기를 밋밋하게 끌고가지 않고 흐름을 쥐었다 폈다 하는 감독의 역량이 인상적이었던 다큐멘터리.

https://www.netflix.com/title/80240088

글을 쓰려고 찾아보다 메리 포핀즈 작가가 입양했던 양아들은 결국 알콜 중독으로 2011년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접하니 한층 섬뜩하다. 이 다큐를 본 사람이라면 나와 비슷한 기분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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