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근래 뜬금없이 중경삼림이 보고 싶어졌는데, 넷플릭스 신작 리스트에 타락천사가 올라왔길래 올려줄 거면 중경삼림부터 올려주지, 라고 생각했더니 며칠 사이에 대부분의 왕가위 작품이 대기 목록에 올라왔고 오늘자로 열렸다.
내가 작품 속 임청하의 나이를 넘어(당시 41살이었다고) 다시 본 중경삼림은 하나도 낡지 않았고(양조위 속옷은 좀 괴롭더라) 화면은 여전히 스타일리시하며 캘리포니아 드리밍은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자주 나왔다.(거의 세뇌 수준인데?)
임청하는 이 작품이 은퇴작이었고 양조위도 한참 젊었던 시절, 금성무, 왕페이는 그야말로 풋풋해서 저 배우들의 아름다운 시절을 새삼 만끽했다. 20세기 말을 산 사람만이 느끼는 진정한 세기말 감성.
사람의 기억이란 믿을 수 없어서, 나는 이걸 분명히 대학 가서 극장에서 봤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찾아보니 94년작, 국내에 95년 9월 개봉이었다고 하니 내가 기억하는 건 타락천사 쪽이었고 이건 고등학교 때 본 모양인데 그 당시에 극장을 자주 가던 편도 아니었는데도 정말로 보고 싶었나보다.(아니면 예전에는 개봉 기간들이 길었으니 수능 끝나고 가서 봤나? )
왜 극장에서 봤는지 기억하는가 하니, 금성무가 하염없이 파인애플 통조림을 따서 먹는 장면에 극장 곳곳에서 ‘헉’ 하는 소리가 들려왔더랬는데 그 장면을 다시 보면서 그 순간이 생각나더란. 그리고 보는 나도 다시 헉, 했다…
지금 와서 보는 앞 에피소드는 은근 금성무 먹방 영화였다. 파인애플 통조림이 문제가 아니라 내내 계속 뭔가를 먹더라…
그리고 영화에서 일본어도 잠깐 썼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30여년이 다 되어가는 작품인데 지금 봐도 왕페이가 입고 있는 옷들은 하나도 촌스럽지 않고 캐릭터는 통통 튀고 양조위는 실연에 어쩔 줄 모르는 둔함의 극치. 저런 엉뚱한 이야기를 어떻게 저렇게 감각적인 화면으로 만들 수 있었을까.
왠지 비오는 화이트 데이에 어울렸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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