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좋은 일이 오려나봐’에서 흘러흘러 ‘자폐’에 대해 좀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에 여기까지.
트위터 타임라인에서 누군가가 ‘주변에 아이가 자폐 진단을 받는 집이 부쩍 늘었다’고 말하는 걸 본 적이 있다.
마치 없던 일이 늘어난 것처럼 말하지만 요즘 들어 미디어에서 자신의 아이가 자폐 진단을 받았다는 걸 오픈하는 일이 많아졌고 자폐를 소재로 하는 드라마가 흥행하면서 그 단어가 예전보다 우리 눈에 더 자주 들어오고 지금의 부모들은 아이가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면 빠르게 병원을 찾고 진단을 받기 때문에 수가 늘어난 것으로 보일 뿐, 이 책에 나오는 500년 전 러시아의 구두공 이야기를 빌자면
500년 전 러시아에 한 구두공이 살았는데 그는 한겨울에 벌거벗은 채 돌아다니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끊임없이 지껄였고 사는 데 필요한 것들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 사람들은 이런 행동을 광기라기보다 오히려 ‘주님의 어리석음’이라 부르며 극히 성스러운 광경을 목격한다고 생각했다.
p.80
당시 러시아인들은 이 구두공이 경건하게 고난의 길을 걸으며 주님이 자신의 입을 통해 말할 수 있도록 희생한다고 믿었으며 그의 거침없는 행동에서 구약 속의 위대한 선지자를 떠올렸지만 역설적으로 500년 전에 자폐증이라는 진단명이 있었다면 민중은 이 사람들을 신성한 존재로 경외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도 계속 이런 사람들이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시대에 따라 신이 들렸다거나 이런저런 오해와 함께 살아오지 않았을까.
공황장애가 유행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은 예전부터 사람들은 공황을 겪어왔고 병원에 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걸 모른 채 막연히 정신과에 가는 걸 꺼렸지만 미디어에서 공황장애를 겪은 사람들이 크게 소리를 내어 말하기 시작하고 예전보다는 병원의 문턱이 낮아지면서 당연히 그 진단을 받은 사람이 ‘많아진’ 것처럼.
지난번 ‘완경선언’ 처럼 혹시 내가 너무 전문서적을 고른 건가, 전문용어가 난무해서 어려우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오히려 이 책은 자폐를 겪는 사람보다는 그동안 자폐에 대해 접할 일이 없었던 사람이 봐야 할 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자폐란 무엇인지’ 알고 싶었던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저자는 역사가 백여년이 채 되지 않은, ‘딱 잘라 규정할 방법이 여전히 없는’ 자폐라는 기이한 진단명이 어떤 과정으로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지 차분하게 시간을 따라 풀어낸다.
맨 처음 이 진단을 받은 사람에서 시작해서 쉼없이 자폐를 겪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서사로 이어나가서 처음에 막막했던 책 두께에 비해 책장은 가볍게 넘어갔지만 한 장 한 장의 내용은 아이를 어떻게든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게 만들고 말겠다는 부모들의 사투로 이루어져 있었다.
어려운 전문 용어를 쓰지도 않고 필요한 개념들은 충분히 잘 풀어 설명해줘서 좋았다.
그리고 읽는 내내 우리나라의 자폐의 역사는 아직 이 책의 절반도 채 오지 못했고 앞으로 갈 길이 너무 멀며 법도 사람도 기댈 수 없는 한층 고독한 길일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을 했다.
유난히 ‘어딘가 다른 사람’에게 각박한 우리 사회에서 누구나 한번쯤은 읽어봐야 할 책.(책 두께가 접근성이 좋지는 않지만)
자폐인 드라마 주인공을 보며 ‘힐링’하기보다는 좀더 본질적으로 알고 좀더 그들을 배려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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