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크로이츠님 홈의 글을 보고 문득 생각난 게 최근 재미있게 보고 있는 이 만화였습니다. ^^;
저희처럼 일본에서 살고 있는 부부의 일상 이야기인데 보다보면 ‘맞아 맞아’ 하게 되는 내용이 많더군요.

예전 같으면 크로이츠님 홈의 글을 보면서 당연히 ‘별 싸가지 없는…’이라고(물론 저 이야기속의 여자분들은 좀 싸가지가 없으시긴 한 듯? -_-;) 생각했을 것 같은데 지금은 저도 모르게 먼저 뜨끔하네요. ^^;
저도 전철을 타면 당연히 내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없다는 전제 하에서 대나무숲이랑 ‘저 사람 머리 좀 봐’ 라든지 ‘옷 끝내주네’ 같은 이야기를 하게 되거든요. 물론 ‘저 자식’이라든지 하는 류의 험한 표현을 쓰는 일은 없습니다만…-_-
생각해보니 한류 붐 때문에 한국어를 공부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 앞으로 좀더 조심해야겠습니다. ^^;;


그 후에 크로이츠님 글의 트랙백을 타고 간 March Hare 님의 글에서는 ‘절대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죽도록 창피한 일본인과의 대화’의 추억이 생각나버렸습니다. 이 이야기는 언제 여기에 올렸던 거 같은데 검색해보니 안 보이네요. 그냥 생각난 김에 한번 더 하자면..

예전에 직장을 다닐 때, 야근을 하다가 일본 거래처에서 상사 앞으로 온 전화를 대신 받을 일이 있었는데(아즈망가 DVD에 한국판 코믹 로고를 사용해도 되겠느냐 라는 일본 판권사의 문의 전화였었음), 저쪽에서는 받을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받자 당연히 영어로 먼저 말을 하더군요.
그 순간 영어로 ‘그는 자리에 없습니다’라고 할 줄 알았더라면 정말 아무 문제 없었을텐데 그 한 마디를 몰랐던 죄로 ‘(차라리) 일본어로 해주세요’라고 말해버리고 만 겁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전화기 너머로 하는 말이 무슨 소리인지는 알아듣겠는데 정말로 입이 안 떨어지더군요. 어버버 하는 사이에 저쪽에서도 상황 파악이 끝났는지(-_-)
“그쪽 상사에게 e-mail 주소 하나 전달해 주시겠어요?”
라더군요.
이 대화를 끝낼 수 있는 한줄기 광명을 본 기분으로 냉큼
“네!(はい!)”
라고 대답하자 저쪽에서
“****하이픈****@***”
이라고 주소를 불러주더군요.
들었으니 대답을 해줘야 할 것 같아 다시
“네.(はい.)”
라고 대답을 하니 저쪽에서 돌아온 말이….

“はい(하이)가 아니라 하이픈(-)이예요.”
.
.
.
.
.
“네(はい)”

“はい(하이)가 아니라 하이픈(-)이라니까요.”

“네(はい)[아 어쩌라고오오오]”

결국 저쪽에서는 매우 미심쩍은 듯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더랬지요. -_-;(물론 메일 주소는 잘 전해주었습니다만…)
이것이 제가 기억하는 일본인과의 첫 대화(그것도 전화통화!) 입니다.

얼굴보고 하는 회화도 어렵지만 지금도 더 싫어하는 건 전화통화로군요. 얼굴 보고 이야기하는 거야 안되면 몸짓 발짓으로도 어찌어찌 전달은 되겠지만 수화기 앞에서 잘 되지도 않는 일본어를 하고 있자면 정말 가끔 눈 앞이 시커매지지요.
친하게 지내는 조카와(한국어 전혀 못함) 통화할 일이 종종 있는데 할 때마다 내가 너무나 괴로워하는 알았는지 최근에는 문자를 애용해주고 있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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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responses

  1. Tom

    나 옛날에 전화돌이 일할 적에…

    첨 알았다. 한국에 그렇게 여러 나라 사람들이 들어와 있는 줄은.
    미국계, 유럽계, 아시아계 거기에 아프리카 계까지.

    첨에는 정말 가슴 떨리구 당황스럽더만… ^^;;;

    당시 겪었던 일본 사람들의 특징은…
    무조건 ‘모시모시?’하고 들이댄다는 것. 이쪽에서 영어로 응대를 해도(‘저는 일어를 못하니 일어를 할줄 아는 사람에게 돌리겠다. 끊지 말구 기다려라.’라는 안내) 끝까지 일본어로 ‘난 영어 모른다~’ 식으로 계속 일어로 어쩌구저쩌구. 결국은 일어 잘하는 사람한테 ‘기다려 주십시오.’라는 말 한마디 배워서 내내 그것만 써먹었지. 원래는 좀 더 공손한 멘트를 적어줬었는데 그건 넘 어려워서 나중에는 “마떼 구다사이~” 하고 땡쳤었지. 아~ 그 세월이 벌써 10년도 넘었다.

    1. 리츠코

      말을 어느 정도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외국어를 듣는 순간 자신의 실력을 그나마 다 쓸 수 있는 건 얼마나 말해본 경험이 있느냐인 것 같아요.

      뭐, 마떼 구다사이 정도면 양호하네요. 전화 건 사람도 정중하고 길게 말하는 것보다 짧게 말하고 빨리 일어가 되는 사람을 바꿔주는 걸 더 좋아했을 듯? ^^;

  2. 그럴땐 그저 ‘Can you speak Korean?’으로 밀어붙이시는겁니다!

    …제 친구가 영어 회화 수업때 그렇게 말하고 상대는 ‘Oh, Yes, I can speak Korean!’
    ‘야 잘되었네요. 저도 한국말 배우는 중인데’/’어 그러세요?’
    라면서 한국어로 대화.

    …둘다 F먹었다더군요.(…당연하잖아)

    1. 리츠코

      으음.. 친구분의 시도는 역시 젊을 때나 가능한 무모한 시도였군요. -_-;;;

      업무만 아니었으면 저는 그냥 확 끊었을거예요..-_-;;

  3. 하임맘

    ㅋㅋㅋ 외국에 나가있으면 정말 지나가다가도 사람 앞에 두고는 차마 할 수 없는 말들을 하게 되는 듯.. 외국 생활하면 못마땅한게 뭐가 그리도 많은지..하하..
    외국어 공부하면서 황당한 실수 한번쯤 안하는 경우는 없지. ^^
    나도 그 방면에서는 할말이 좀 많으이..ㅋㅋ

    1. 리츠코

      맞아맞아. 보고 있으면 뭔가 못마땅한 게 많아지는 게 많더라고.
      나는 제대로 말하는 때보다 실수하는 때가 더 많아서 도저히 셀 수가 없군. -.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