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초대코드 페이지를 정리하다보니 생각난 일.

아이 1학년 때 같은 반에 정말 단순히 ‘문제아’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 많은 문제가 있는 아이가 있었다.
그 해의 우리 반은 시간이 갈수록 악명이 높아져서 엄마들이 놀이터 한복판에서 머리채를 잡았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그 문제아의 엄마가 다른 엄마에게 지역 멸칭으로 욕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6년 내내 1학년 때 몇 반이었어요? 라는 질문에 *반이었어요, 라고 대답하면 상대방이 아련한 눈으로 Aㅏ… 하고 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해의 절반이 지나서야 평소 조용한 우리집 아이는 그 아이 주변의 붙박이 자리였다는 걸 알았고 어린 아이를 상대로 편의만을 생각한 담임 선생님이 매우 불쾌했다.

그리고 평소에 ‘정년을 채우겠다’고 말하고 다니셨다는 연세가 지긋했던 담임 선생님은 본인이 더 이상 평교사로서의 역량에 한계를 느끼셨는지 그 해를 마지막으로 명예퇴직을 하셨다.

아무튼 그리고 1학년 마지막날이 되자 그 아이가 2학년 몇 반이 되었는지 온 동네 엄마들이 벌집을 쑤신 마냥 난리가 났다.

이 사람은 *반이 됐더라, 저 사람은 *반이 됐더라.

이미 학교 엄마들 관계에 피곤할대로 피곤했던 나는 학급 단톡방, 몇몇 엄마들 단톡방에 날아드는 아우성 같은 카톡들을 보다가 구글 엑셀 스프레스 시트 파일을 폈다.

1반 2반 3반 4반 5반…

쭉 적어내려간 후 일단 가장 확실하게 들은 그 아이의 2학년 반을 넣은 다음 대화방에 올라왔던 다른 몇몇 아이의 이름을 해당 반에 넣고 캡쳐해서 대화방에 올린 다음 자신이나 주변에 몇 반이 됐는지 아는 분은 알려달라고 했다. 목적은 그 아이가 몇 반인지 알기 위해서지만 마치 아이들이 내년에 누구와 같은 반인지 아는 게 목적인 양.

요즘은 한 반이 30명(이 동네는 그나마 애들이 많아서) 정도이니 의외로 그렇게 모인 정보로 채워지는 칸이 꽤 많았고 어떨 때는 전체 인원이 다 채워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2학년이 지나고 3학년에 딸내미는 다시 그 아이와 같은 반이 되었는데 다시 한번 지옥같은 반 년을 보내고 그 아이는 2학기에 어디론가 전학을 가버렸다.

지금도 종종 딸과 나는 그 아이는 ‘나중에 연예인이나 좋은 일로 티비에 얼굴이 절대 나올 수 없을 것(나오는 순간 컴퓨터 키보드 앞으로 뛰쳐나갈 사람만 적어도 이 동네에 열은 넘을 듯)이라는 말을 종종 한다.

아무튼.

그리고 그렇게 한 학년 마지막 날에 돌리기 시작한 미리 보는 학급 배정표(?)는 결국 6년 내내 했다.
딸내미가 내년에 누구랑 같은 반일지 궁금해서 소일삼아 계속 했는데 마지막 해에 다른 엄마들에게 ‘자기 아이가 내성적인데 미리 누가 같은 반인지 알고 갈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는 말을 듣기도 해서 꽤 재미있었던 일.

초대코드 게시판을 열어놓고 보니 저 때 생각이 나서 문득 ‘오지랖도 병이지’ 라며 혼자 쓴웃음을 지었다.

뻘하지만 결론은.
저 게시판은 코드가 필요한 사람과 필요없는 사람이 무탈하게 잘 쓸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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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sponses

  1. nanda

    ㅋㅋㅋ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저도 그거 싱가기 전까지 했는데 심지어 싱가폴에 있는데도 그거 해달라는 요청이 와서(..) 6학년까지 싱에서 원격으로 해줬었다는 …카톡으로 누구 몇반이래요 라는 제보가 계속와서 명단 만들기까지 얼마 안 걸렸는데 다른 학년도 지인이 시도했다가 그 명단에 내 애는 빠져서 기분 나쁘다 표현한 엄마가 나오면서 두 버전이 따로 돌기도 했었어요 ㅋ(니가 내 애 이름을 뻬먹어? 그럼 우리를 메인으로(?) 다시 만들테다)

    1. Ritz

      아닠ㅋㅋ 그걸 싱가폴에 있는 사람한테 왜 부탁을. ㅋㅋㅋㅋ 그 와중에 새로 만든 사람은 또 무엇… 차라리 처음부터 그 사람이 만들면 될 것을. 정말 학교 엄마들 세상도 요지경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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