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리디북스를 둘러보다가 우연히 눈에 띄어 1권을 사고, 읽다보니 괜찮아서 2권도 샀던 시리즈. 며칠전에 보니 3권도 나왔길래 마저 지른 후 다 읽고난 김에 몇글자 끄적.

우리가 보통 잘 알지 못하는 역사 속에 숨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나 겉핥기로 대강만 알고 있는 제도, 사건들에 대해 어렵지 않게 풀어내서 부담없이 읽기 좋다.

가장 기억에 남은 건 당시로 치면 참으로 의미 없게 ‘시를 잘 짓는 노비’로 태어나 한 평생을 힘들게 살다가 간 이름조차 남지 않은 정초부(정씨 성을 가진 나무꾼)의 이야기.

한시에 능해서 재주가 아깝다며 주인이 노비 신분에서 해방시키지만 정작 양인이 되는 바람에 더 빈궁하게 살았고 배우지 못한 나무꾼이 재주를 가진 걸 신기해하며 구경오는 양반들에게

강가에 있는 나무꾼 집일 뿐
과객 맞는 여관이 아니라오.
내 성명을 알고 싶다면
광릉에 가서 꽃에게나 물으시오

라고 읊는 모습이 처량하기도, 안쓰럽기도 하다.(양반님네들은 신기해만 하지 말고 쌀이라도 좀 보태주든지…? -_-)

웃기는 건 읽을 때는 재미있는데 마지막 장을 덮으면, 세상이 편해지고 변했어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그리 바뀌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좀 갑갑해진다.

과장에는 노소 귀천이 없이 무질서한 것이 유풍이라고 한다. 또 가관인 것은 늙은 선비들이 구걸하는 일인데, 관풍각을 향해 새끼 그물에 머리를 들이밀고 큰 소리로 외쳐대는 것이다. ‘소생은 성명이 아무개이옵는데, 먼 시골에 거생하면서 과시科時마다 내 참가하였던 바, 금년 나이 70도 훨씬 넘었사오니 다음에는 다시 참과參科하지 못하겠습니다. 초시라도 한번 급격이 되어 죽어도 한이 없겠습니다.’

조선의 마지막 과거시험장의 모습을 회상한 백범 일지의 이 글에서 나이가 얼마를 먹든 하염없이 고시에 매달리는 고시생의 모습을 겹쳐보고

‘영어는 출세의 자본. 입신출세를 꿈꾸는 청소년 제군에게 있어서는 영어는 제일 중요한 자본이다’라는 글로 영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통신 영어 광고도 있었다.

이미 80년전에도 제 나랏말도 모르면서 외국어부터 배우려는 풍조와 영어 이외의 다른 과목을 경시하는 세태를 개탄하는 목소리가 있었으나 지금도 그리 변한 건 없다는 점에 아득하다.

1800년대에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외국인들은 조선 사람들의 특성을 ‘구경하기’와 ‘기웃거리기’를 최고의 즐거움으로 여기는, ‘호기심’이 강한 민족이라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는데(그냥 오지랍이 넓은 거 아닌가.; ) 지금의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면 어떤 인상을 받을지 좀 궁금하기도.

역사를 배워야하는 건 기억해야할 건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할 건 잊지 않기 위해서겠지만 꽤 아득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보고 다시 지금을 생각했을 때 변했어야 할 것들이 그리 많이 변하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 건 좀 우울하다.

역사 ⓔ8점
EBS 역사채널ⓔ.국사편찬위원회 기획/북하우스
역사 ⓔ 28점
EBS 역사채널ⓔ 지음/북하우스
역사 ⓔ 38점
EBS 역사채널ⓔ 지음/북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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