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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흔한 주식도 해본 적 없는데 왜 자꾸 이런 책만 잡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지난번에 ‘우리는 투기의 민족입니다’ 글 아래에 토몽의 추천이 있길래 도서관에 검색하니 집앞에는 없어서 상호대차로 빌려온 책. 발행 연도를 보니 제법 된 책이었다.

이런 책들을 보다보면 지금의 사람들이 새삼스럽게 한탕에 눈이 먼 것이 아니라 인간은 옛날부터 쭈욱 그 기회만을 노려왔다는 것과 그렇게 운과 때를 만나 쉽게 큰 돈을 손에 거머쥔 사람 중에 그걸 끝까지 지키는 경우 역시 얼마 되지 않는다는 걸 새삼 배운다.

투기시장에서 기십만 원 기백만 원의 자금이 없이 큰 성공을 거두려거든 먼저 사람 노릇을 포기해야 한다. 부모처자를 생이별하고 알몸으로 제 한몸이 되어 아무 거리낌 없이 홀가분하게 한 후에 기십 원이든지 기백 원을 만들어가지고 발을 들어놓는데, 그날부터는 마음을 아주 지독하게 먹어야 한다.

취인소 문턱을 돌베개로 삼고, 여차하면 세상을 떠날 최후의 비통한 장면까지 생각해야 한다. 왜 그런가 하면 투기에는 끈기가 날실이 되고 배포 큰 것이 씨실이 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이건혁, ‘일확천금은 가능하냐?’ [조광] 1936년 1월호

p141

이미 100여년 전에 나온 이 글이 지금에 와서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지도.

이 책에서 제일 재미있었던 건, 저 시절 한탕을 노리고 모여든 미두시장에서 엔딩이 아름다운 경우는 미두시장에 내내 매달려 있던 사람이 아니라 뭔지도 모르고 덤볐다가 큰 돈이 들어오자 놀라서 뒤도 안 돌아보고 고향으로 내려가버린 사람이었다는 이야기였다. 머슴살이하며 모은 돈을 겁도 없이 넣었다가 몇 배로 돌려받은 그는 그대로 금의환향하여 집 사고 논 사고 장가 들며 벼락부자가 되어 잘 살았다고… 😆

저렇게 생각지도 못하게 큰 돈이 손에 들어왔을 때 그 자리에서 털고 일어나는 게 쉽지 않을텐데 지금의 사람들도 참고할만한(?) 태도가 아닐런지. ^^;

내가 쓰다 남은 돈이 있어 돌집 한 채 짓고 몇 학교에 돈을 좀 내었기로 그다지 훌륭해서 찬하회를 한다니 세상 사람들은 부질없기도 하오. 사회에 돈을 내는 뜻? 무식한 늙은이에게 뜻 같은 게 있을 리 있나. 자손 없는 백 과부, 돈 남기고 죽어서 친척 녀석들이 재산싸움 한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그런 험한 꼴이 어디 있나. 그러니 내 생전에 세상에 좋다는 사업에 썼으면 좋은 일 아니겠나?

-‘고 백선행 여사 일생 3’, 동아일보, 1933년 5월 12일자

p229

이 책은 그 시절 한방으로 팔자를 고쳐보겠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스러져갔는지와 축적한 부를 ‘잘 쓰고’ 간 사람들에 대해 구성되어 있는데 매번 역사라는 큰 줄기만 보다가 이렇게 어느 한 부분에 돋보기를 갖다대고 그 너머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는 재미가 나름 각별하다.

어쨌거나 나는 사람 노릇을 포기할 생각은 없으니, 앞으로도 일확천금보다는 살던대로 살기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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