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얼마전에 누가 나한테 ‘다큐멘터리를 왜 보는지’ 물은 적 있었는데, 이 다큐를 본 이유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그냥 정말 ‘누가’ 맬컴 X를 죽였는지 궁금했다. -_-;(누가 죽였나, 쿠크로빈도 아니고…)

1965년 2월, 뉴욕 오두본 볼룸에서 연설을 하려던 맬컴 X는 갑자기 등장한 괴한의 산탄총, 그리고 이어 등장한 두 명의 총까지 무려 16발의 총상을 입고 쓰러졌다. 이들은 기존에 맬컴 X가 속해있다가 탈퇴한 네이션 오브 이슬람이라는 집단에서 보낸 사람들이라는 게 일단 정설이지만 그 배후에 FBI가 있을지, 또 다른 세력이 있었을지 모르는 일이라고들 해서─워낙 적이 많았던 사람이라─ 다큐멘터리는 이 음모론의 정확한 배후를 캐는 이야기일까 했는데 그것보다는 좀더 일차원적인(?) 이야기였다.

맬컴 X의 지지자인 무함마드라는 사람이 아무래도 당시 수사 결과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혼자 힘으로 여기저기 발로 뛰어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고 그렇게 드러난 사실은, 거창하게 배후 운운할 것도 없이 애초에 당시 경찰이 범인으로 잡아들인 세 명 중 두 명은 무고한 사람들이었고,(한 명은 현장에서 잡혀서 그나마 진범이었지만 나머지 두 명은 네이션 오브 이슬람에서 과격한 성향인 사람을 둘 골라 밀어넣은 듯) 가장 중요한 범인인 산탄총을 쏜 남자는 그 자리에서 유유히 사라져 그 후로 어느 기관에서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것.

그 뒤를 쫓고 쫓아 결국 범인의 정체를 알아내는데 (구)윌리엄 브래들리 (현)알 무스타파 샤바즈라는 이 사람은 그 이후로도 젊은 시절 강력 범죄로 여러번 감옥을 들락날락하다가 중년 즈음에 사회운동을 하는 아내를 만나 갑자기 개과천선을 한 듯 지역사회에 봉사하며 존경을 받다가 무함마드가 그간 모은 자료를 가지고 작정하고 만나려고 한 시점에 세상을 떠난다.

이 사람 때문에 무고하게 감옥에서 20년을 보낸 피해자가 있고, 무엇보다 맬컴 X를 죽인 죄값은 제대로 치르지도 않았는데 모두의 존경 속에 장례를 치르는 상황이 부조리하다고 생각한 무함마드는 그 지역사회의 사람들을 만나 브래들리의 정체에 대해 폭로하는데, 뜻밖에도 대부분 마치 도시전설 마냥 암암리에 그 사람이 실은 맬컴 X를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 사람들이 알고 있는 ‘샤바즈’는 좋은 사람이고 실제로 그 사람이 자신의 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직접 물어본 적도 없으면서 ‘그는 회개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어떤 사건에 대해 ‘시간이 많이 흘렀고 지금은 그때와 다른 사람이니 지나가야 한다’는 용서의 말을 해도 되는 건 오직 피해자 뿐, 가해자나 주변인에게는 그 말을 할 자격이 없다.
그래서 다큐를 보면서 맬컴 X의 가족도, 억울하게 20년을 감옥에서 보낸 사람도 아무도 용서하지 않았는데 저 브래들리라는 사람은 혹시 스스로 자신을 용서한 채 떠난 건 아닐지 순간 분하고 씁쓸해졌다.

총 6부작이라 아마 맬컴 X에 대해서는 가장 상세하게 알 수 있는 다큐멘터리일 듯.
물리적으로 산탄총을 쏜 건 브래들리였지만 넓게 보자면 그날 그들이 일을 저지르도록 암암리에 방치한 경찰, 그 후 범인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도 외면한 FBI 등을 생각하면 과연 정말로 맬컴 X를 죽인 건 ‘누구’일까 하는 점도 중요한 주제였지만 나는 어이없게도 마지막에 이 허락할 수 없는 ‘용서’에 대한 분함만 남았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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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sponses

  1. 요전에 제가 읽은 아리스가와 아리스 책도 그렇고 정말 피해자만 용서할 수 있는 건데 말이죠…

    1. Ritz

      요즘 왜 이렇게 셀프 용서하는 뻔뻔한 이야기가 많은가 모르겠어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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