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편이라 그런가, 초등학생 때 위인전을 읽으면 모두 교훈적인 이야기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그때도 꽤 열심히 봤었다.

지금이야 티비 혹은 책 같은 미디어에서 접하다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할 경우가 생기면 찾아서 보는 정도지만 그 사람에 대해 막연하게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좀더 선명해지고 좋은 면도 나쁜 면도 상세하게 알 수 있어서 좋아하는 장르 중 하나가 평전류.
지난번 백석 평전처럼 순애보적 시인일 줄 알았던 사람이 알고보니 결혼을 네 번이나 했다든지 하는 사실을 아는 것도 평전을 읽는 재미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그 뒤로 백석의 연애시에 대한 환상은 전멸)

다 읽은 후 추사에 대한 감상은, 참으로 까칠하고 까다롭고 완벽주의 때문에 자기를 볶는 외로운 사람이었다.(지금같으면 트위터 같은 데서 말발이 어마어마했을 것 같음)
명문가에서 태어나 승승장구하며 주변에 능력도 인정받았던 데다가 아는 걸 안다고 모두 말해야 하는, 어찌 보면 치기가 넘치던 사람이 쉰이 넘어 제주도에서 10여년, 그리고 얼마 후에 북청에서 2년여를 유배생활을 하면서 치열하게 괴로워하고 그러면서 서서히 내려놓음을 깨달아가는 과정은 좀 찡할 정도.
글쓴이도 한 이야기이지만 말할 수 없이 괴로웠을 그 시간이 추사가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는 장르에서 일가를 이룰 수 있도록 만들었으니 그것도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

책 안에 실린 화보 자료도 충실해서 6백여 페이지에 육박하는 글을 읽는 동안 추사의 서체들을 반복해서 보다보면 그동안 도무지 어디가 멋있는 건지 알 수 없었던 ‘추사체’에 대해서도 아슴하게나마 뭐가 다른 건지 (강제로라도) 알 것 같은 기분.

유홍준의 다른 책들에서도 워낙 추사 김정희에 대한 애정은 자주 드러나는 편이라 이 사람이 쓴 평전이라면 한번 읽을 만하지 않을까 해서 골랐는데 시간 흐름대로 꼼꼼하게 훑어나가서 추사에 대해 전공할 게 아니라면 이 한 권으로 어지간해서는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 글씨엔 아직 부족함이 많지만 나는 칠십 평생에 벼루 열 개를 밑창냈고 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 아무리 구천구백구십구 분까지 이르렀다 해도 나머지 일 분만은 원만하게 성취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이것이 인력 밖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는 “알면 말하지 않은 것이 없고, 말하면 다하지 않은 것이 없다”라고 했다. 그런 자세로 학문과 예술을 완성해가는 모습이 그를 위인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다.

*생각해보니 요즘은 ‘알면 말하지 않은 것이 없는’ 사람은 많지만 ‘말하면 다하지 않은 것이 없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추사 김정희 하면 아주 먼 옛날 사람 같은데 석파 이하응(흥선대원군)이 이 사람에게 난과 글씨를 배웠다는 걸 읽을 때마다 생각보다 가까운 시대를 살았구나 하고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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