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작품은 소설보다 에세이를 더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돈 주고 사서 볼 정도는 아니라 보통 빌려읽거나 동생이 사뒀거나, 손에 집히면 읽는 정도였는데 이번 에세이는 유난히 이야기가 많이 보여서 궁금해서 주문해봤다.
언뜻 제목만 보고 반려묘에 대한 이야기인가보다, 생각하고 마침 책도 별로 두껍지 않길래 하루키 에세이라면 혜린이도 좋아할 것 같아 먼저 읽어보라고 했는데 반응이 영 뜨뜻미지근해서 왜 그런가 했더니 정작 내용이 내가 생각했던 하루키 에세이 특유의 니힐한 개그 감각?이 단 한 점도 없는 진지한 한 권이었다. ‘고양이를 버린’게 제목이 아니라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본 제목이었던 셈.
하루키의 아버지는 무려 전쟁에 세 번을 징집당한 사람이었고(그야말로 전쟁터에서 죽을 때까지 부를 참인가) 작가는 전쟁이 아버지의 삶 혹은 자신의 존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전쟁이 한 인간에게 어떤 상처를 남기는지에 대해 언젠가 글로 남기는 게 작가로서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만약 작가가 아버지와 친밀했다면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내용이 풍성해졌을지도 모르지만 이 에세이는 오히려 작가가 아버지와 20년 가까이 멀리 지내서 알지 못하는 공백을 무리하게 채우려 하지 않고 자신이 확인할 수 있는 선에서 사실을 찾아 과장 없이 담담하게 풀어나가면서 깊이는 깊어지지 않았나 싶다.
아버지와 함께 버리고 온 고양이가 집에 먼저 돌아와 있었다는, 어찌보면 뜬금없는 기억에서부터 시작해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전쟁과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걸 보면서 역시 하루키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우울한 요즘에 좀 유쾌한 글을 읽고 싶어 잡았는데 예상과 달랐지만 그럼에도 마음에 든 작품이었다.
(그리고 딸내미에게는 다시 다른 책으로 하루키의 에세이를 영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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