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도서관에서 검색하다가 눈에 띄어 책 두권을 예약해뒀었는데 분명히 문자로 알림이 올 거라고 생각했건만 황당하게도 ‘빌려가지 않아 예약이 취소되었다’는 문자만 덜렁 날아왔다.
퍼뜩 짚이는 데가 있어 스팸문자를 뒤져보니 ‘[예약도서 도착] 서명:*** *월*일까지 대출가능합니다’라는 문구에서 ‘대출’이라는 단어가 필터링에 걸려서 알림이 오지 않았던 것. -_-;

그렇게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한권 날리고 이 문자를 확인한 날 아침에 와 있던 알림 문자를 보고 대여한 것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다. 

지난번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만큼 영문 모를 제목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이 제목의 쓰임새 또한 재미있었다. : )

이번에는 처음부터 ‘이야깃거리가 없어 곤란한 일은 일단 없다’고 호언장담을 하더니 그래서인지 이전에 읽었던 에세이집과 겹치는 이야기도 없었고(전작에서는 자신이 쓴 책은 다시 읽지 않아 같은 이야기를 하는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고 했다..;) 약간은 뜬금없는, 머리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잡아 차근차근 정리하는 글솜씨는 여전하다. 
그런 면에서 이 작가는 역시 소설보다는 에세이 쪽이 취향.  
여전히, 가볍게 잡고 읽기에 부담없는 에세이집으로 ‘채소의 기분’보다 좀더 와닿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훨씬 재미있었다. 표지도 이쪽이 더 취향(?)  

상처입지 않도록 두꺼운 갑옷을 입거나 피부를 단단하게 하면 통증은 줄지만, 그만큼 감수성은 날카로움을 잃어 젊을 때와 같은 싱싱하고 신선한 눈으로 세계를 볼 수 없게 된다. 요컨대 우리는 그런 손실과 맞바꾸어 현실적인 편의를 취하는 것이다. 뭐, 어느 정도 불가피한 일이긴 하지만.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는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에 이어, 패션 주간지 「앙앙」에 연재한 52편의 권두 에세이를 한 권으로 묶은 것이다. 

“하루키가 아니었다면 누가 채소의 기분을 상상이나 했을까?”라는 시인 정호승의 말처럼, 이번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역시 아무도 글로 담지 않았던 야릇한 기분이나 공기의 감촉을 달라지게 하는 미묘한 분위기를 적확하게 표현해낸다. 작가 특유의 고감도 더듬이로 분명하면서도 섬세하게 그리고 유쾌하게 포착해낸 일상의 조각들이 신선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평소 낯가림이 심하기로 유명한 작가이지만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를 펼치는 순간, 편안한 차림으로 동네를 산책하며 가끔은 수다스러워지는 하루키 씨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2 responses

  1. Jinsol Jung

    제목이 특이해요.ㅋㅋ 샐러드랑 사자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