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올해 2월쯤이었나 넷플릭스 들어갔다가 메인에 뜨길래 범죄수사 장르 드라마인 줄 알고 클릭했는데 보다보니 다큐멘터리였고 어쩌다보니 옆사람도 같이 보면서 둘이 내내 다큐멘터리에서 유도하는대로(…) CCTV 영상을 보며 상황을 의심했다가 범인을 예측했다가 오락가락 했는데 결론을 보고 나니 마치 뭐에 홀린 기분이 들 정도였다.

2013년, 조울증을 앓고 있던 중국계 캐나다인 대학생 엘리사 램이 홀로 LA에 여행을 왔다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경찰이 수색에 나서지만 별 소득이 없었고 20여일 뒤에 그녀가 묵었던 호텔에서는 물 수압이 낮고 색깔과 맛이 이상하다는 투숙객의 클레임이 들어와서 옥상의 물탱크를 조사했는데 탱크 문이 열려있었고 그 안에서 엘리사 램의 시체가 발견된다.

이 사건에서 가장 문제가 됐던 건 경찰이 처음에 목격자를 찾기 위해 공개했던 CCTV 영상.

아직도 유튜브에 검색하면 영상이 꽤 많이 나오는데 혼자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온 그녀는 갑자기 여러 층의 버튼을 누르더니 문이 닫히지 않자 머리만 내밀고 밖을 살펴보기도 하고 구석에 몸을 붙이고 있거나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갔다 들어왔다 한다. 그러다 다시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가서는 무언가를 향해 손을 내젓다가 CCTV의 앵글 밖으로 사라지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다. 곧이어 엘리베이터의 문이 다시 열리지만 아무도 타지 않고 다시 닫힌다. 이런 모습이 한번 더 반복되고 영상은 끝난다.

맨 처음에 보면 정말 기괴하다. 그녀가 카메라 안 보이는 곳에 있는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이야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카메라 앵글 밖의 누군가가 영락없이 범인일 것 같은 느낌적 느낌!

그리고 경찰 측에서 언론에 사건에 대해 브리핑할 때 실수로 정보를 잘못 공개한다든지 이런저런 우연이 겹치면서 이 영상에 수많은 네티즌 혹은 뷰 수를 노리는 유튜버들이 달려들고 초 단위로 해부해서 영상이 비어있는 시간이 있다는 둥, 속도가 조절돼 있다는 둥 음모론이 시작된다.

결국 결론은 사고사로 발표된 후에도 경찰이 제대로 일하고 있지 않다는 의심은 사라지지 않고 모두 어딘가에 있을 ‘범인’을 찾는 데에 열중한다. 그 와중에 엉뚱하게도 사건 당시에 그 도시에 있지도 않았던 어느 헤비메탈 가수는 우연히 노래 중에 사건을 암시하는 ‘듯한’ 가사가 있다는 이유로 공격당하기도 하는데 이 사람이 엘리사 램 다음으로 가장 큰 피해자 아닐까. 목숨을 버리고 싶을 정도로 뜬금없이 사이버불링을 당했음에도 모든 결과가 나온 후에 누구 하나 사과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분노하는 모습이 안타까울 따름.

생각해볼만한 포인트가 많은 작품이긴 한데, 중간에 끊기 뭐해서 꾸역꾸역 다보긴 했으나 총 4부작으로 빈말로라도 짜임새가 좋다고는 못하겠다.
길어도 2부작으로 충분했을 분량을 같은 화면 계속 반복하면서 중언부언하는 느낌이라 궁금한 사람은 1부 보고 4부 보면 딱 적당할 듯.(그렇게 두 편만 보고 더 궁금하면 중간을 마저 본다든지…)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너무나 황망하게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이 안타까워서 나도 요며칠 내내 신문에 오르내리는 일에 대해 나도 모르게 ‘범인’을 찾는 눈으로 기사를 봤는데 누군가가 트위터에 과열된 사람들의 반응을 비판하면서 넷플릭스 다큐 중에 「크라임 씬 : 세실 호텔 실종 사건」을 보라는 글을 보고 순간 아, 그러고보니 지금과 정말 비슷하구나, 하고 정신이 번뜩 들었다.

제대로 정보가 공개도 되기 전에 검증되지 않은 의심과 의견이 마치 오락마냥 넷상에 지나치게 범람하는 건 저때나 지금이나 문제. 좀더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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