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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오리와 왕자님]
[2화 마음의 조각]

근간의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이-정확히 말하자면 요즘의 일본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이 어딘지 약간은 크런치 초콜릿처럼 비어 있다는 느낌이 있어서, 꽤 잘 된 작품이라고 듣고서 봐도 ‘뭔가 부족해‘ 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적으로 사견입니다만.

최근에 본 ‘위치헌터 로빈‘에서 내내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대체 ‘무엇‘이 부족한 것인가에 대해 딱 집어 말할 수가 없었는데, 이번에 ‘프린세스 츄츄‘(투투라고 해줘야 하나..;)를 보고 나니 그게 무엇이었는지 말할 수 있겠더군요. 요즘의 애니메이션에서 부족했던 것은 ‘작품의 일분 일초를 아껴서 유용하게 사용하고자 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짜고, 그 안에 그림을 그려넣고, 음악을 입히는 모든 과정에 제작자들의 정성이 배어나와 보는 사람이 그것을 뿌듯하게 느낄 수 있는 것. 어찌 말하면 ‘열혈‘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정서, 말이지요.

프리티어의 스탭과 마호츠카이의 스탭이 만나 만든 이 작품은 묘하게 우테나스러우면서도, 우테나와는 확연히 다른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꿈 속에서 본 왕자님이 자신이 동경하는 학교의 선배. 그 선배는 어딘지 병약하면서도 공허한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여주인공 아히루(오리)는 그런 선배의 잃어버린 마음을 찾고자 프린세스 츄츄(..;)가 되고, 이야기는 점점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환상인지, 이 이야기는 과연 마법소녀물인지 미스테리물인지 알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고양이의 모습을 한 발레 선생님과 개미핥기 클래스메이트까지 등장하고 나면 그야말로 이게 대체… 라는 생각만 듭니다만, 그래도 정말로 보는 동안 유쾌합니다.
현재 2화까지 본 상태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이정도 뿐. 앞으로 차근차근 이야기해나가볼까 합니다.

-2002.10.20-

 

코펠리아의 음악과 함께 등장하는 보석장사 에델.
우테나의 그림자 소녀처럼 필요한 순간 나타나는 이 캐릭터가 꽤 마음에 듭니다. 인형 코펠리아처럼 그녀는 드롯셀마이어가 만든 이야기 속의 꼭두각시 인형?

 

[3화 프린세스의 맹세]
[4화 지젤]
[5화 불꽃 축제의 밤에]
[6화 꿈꾸는 오로라]
[7화 까마귀 공주]
[8화 전사의 샘]
[9화 검은 구두]
[10화 신데렐라]

이야기꾼 드롯셀마이어는 자신의 마지막 이야기인 ‘왕자와 까마귀‘의 이야기를 완성시키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합니다. 왕자와 까마귀의 이야기는 결말이 나지 못한 채 멈춰버리고, 왕자도 까마귀도 그러한 결말을 원치 않았기에 왕자는 자신의 심장을 꺼내 금단의 힘을 써서 까마귀를 봉인해버립니다. 그리고 왕자 자신도 ‘마음을 잃어버린‘ 왕자님이 되지요. 그리고 그 이야기는 현실이 되고, 현실과 이야기는 뒤섞여버립니다.
뮤토와 루우, 아히루와 화키아. 불행한 것은 누구일까요.

왕자님의 마음을 하나하나 찾아주는 그녀.
그러나 그 마음을 모두 찾고 난 후 기다리고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마치 동화속의 이야기처럼 한정된 등장인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프린세스 츄츄‘. 오르골 상자 안의 인형들처럼 주인공들은 이야기 속에서 춤을 춥니다. 하나하나 마음을 찾아가는 왕자님은 급기야 ‘자신의 마음을 찾고 싶다‘는 의지를 갖게 되고, 프린세스 츄츄는 고백할 수 없는 마음을 안고 의심없는 마음으로 왕자님의 마음을 하나하나 찾아서 왕자에게 돌려주지만, 그녀가 알지 못하는 그 어떤 일들은 끊임없이 작품을 보고 있는 사람을 불안하게 하고, 까마귀 공주 크레르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더욱 그 앞으로 내다볼 수 없게 됩니다. 공허한 눈을 하고 있지만 종종 굳은 의지의 눈동자를 보여주는 왕자님이 마음을 모두 되찾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프린세스 츄츄‘를 보면서 몰입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이 이야기의 이후를 전혀 짐작할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2002.10.22-

내가 가질 수 없는 마음이라면 부숴버리는 것이 나을지도.
그녀는 각오가 되어있지 않은 악역

[11화 라 실피드]
옛날 옛날
자유로운 날개를 가진 소녀가 있었습니다
소녀를 사랑한 소년은 생각했습니다
저 날개를 붙들어버리면
그러면 잠시도 떨어지지 않을수 있을텐데
하지만 소년이 소녀의 날개를 마법의 숄로 감싸자
갑자기 날개가 떨어져
소녀는 죽어버렸습니다
소년은 몰랐던 것입니다
소녀의 날개는 생명의 근원이었다는 것을
—————————————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왕자와
죽음을 두려워하는 기사,
각오가 되어있지 않은 악역과
사랑을 고백할수 없는 공주.
이만큼 이 작품을 잘 설명해주는 나레이션이 없을 듯 합니다. 이야기 속의 사람이 아닌 현실의 저로서는, 사랑을 얻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왕자의 마음을 찾아주고자 하는 공주보다는 마음을 얻을 수 없으면 그 마음을 통째로 부숴버리려고 하는 악역 쪽에 더 공감이 갑니다. 어딘지 딱 들어맞지 않는 틀 속에서 자칫 누군가 한 명이 궤도를 일탈하면 튕겨나갈 것 같은 톱니바퀴처럼 불안정하게 이야기는 흘러 흘러 갑니다.

-2002.10.28-

아직 누구의 것도 아니야, 이 조각은 나와 당신, 어느쪽을 고를까,
서로의 진심을 속삭여서 어느쪽의 말에 빛내주는지

[12화 어둠의 연회]
옛날 옛날
아름다운 노예가 한명 있었습니다
그를 구속하는건 무거운 쇠사슬이 아니라
공주님의 애정이었습니다
낮이나 밤이나
공주님은 노예에게 사랑을 속삭이고
노예는 거기에 대답합니다
묶여진 몸과
묶여진 기분
벗어날수 없는것은
노예와 공주님
정말은 어느쪽일까요

인형도 너무 오래 사용하면 사람의 감정에 흥미를 가지게 되어 귀찮아

점점 클라이막스로 치달으면서 이 애니메이션이 결국은 개그 애니메이션(?)이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12화입니다.^^; 왕자님을 구하러 가는 공주님과 기사님의 이야기 치고는 너무나 재미가 있어서, 역시… 라고 감탄을 했습니다. 더불어 이번 12화에서 화키아 팬이 된 여성들이 약 200% 정도 증가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게 되는군요. ^^ 차라리 이대로 프린세스 츄츄는 기사님과 잘 되어서 ‘왕자님에게 고백할 필요 없는 공주님‘이 되어줬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 봅니다만… 결코 드롯셀마이어가 이야기를 그렇게 굴러가도록 두지 않겠지요.
예상했던 대로 ‘알의 장‘의 마지막화는 ‘백조의 호수‘입니다. 왕자님과 까마귀의 이야기 속에서 아무도 돌아보지 않을 정도로 불행한 공주 츄츄는 과연 오데트일까요…

 

12화에서 그 어느 때보다 버라이어티한 표정들을 보여준 화키아.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이미 인형왕자 뮤토의 존재는 희미하게만 느껴집니다만.

 

흔히 변신소녀물에서 제기되는 의문점 한가지. 대체 옷은 그렇다치고 속옷은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 모든 궁금증을 한방에 해결해주는군요. 저렇게 속옷을 내팽개치는 히로인도 전무후무할 듯. -_-(캡쳐하다보니 참… )

 

악역의 표정을 고수하고 있는 프린세스 크레르와 그나마 표정을 찾는가 싶더니 다시 인형으로 돌아가버린 왕자만 등장했더라면 얼마나 심심했을까요. -_- 진지함과 개그가 적절히 반복되는 게 이 작품의 또 하나의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13화에서는 결고 개그가 나올 수 없을 것 같습니다만…(그러니까 결국 라스트 보스는 고양이 선생님이라든지 한다면 모를까…;)

-2002.11.4-

이야기의 마지막은…

[13화 백조의 호수]
옛날옛날
아름다운 백조를 사랑한 왕자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왕자는
흑조의 비열한 계략에 걸려
사랑하는 백조를 배신해 버렸습니다
흑조에게 사랑을 맹세한 왕자
하지만 백조는
자신의 몸을 던져
사랑하는 왕자를 지켜주려 합니다
지금이야말로
그 사랑의 깊이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보았던 동화 중에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어떤 스릴감이 있는 작품들을 말해보라면, 백조 왕자라든지 백조의 호수 같은 작품이 있겠지요. 프린세스 츄츄의 마지막화 제목이 ‘백조의 호수‘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면 당연할 수 밖에 없는 귀결일 듯 합니다.

이야기를 움직이게 한건 너야

마침내 운명적으로 까마귀들과 대치하는 기사. 까마귀 가면을 쓴 발레리나들과 화키아의 전투장면은 발레 애니메이션에서만 볼 수 있는 부드러움과 박력 양쪽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운명같은거 내가 바꿔주겠어

정해진 운명에서 제일 먼저 벗어나 톱니바퀴의 나사를 풀어버린 기사님, 화키아는 이 작품에서 가장 알 수 없으면서도 액티브하게 극 전체를 흐트러놓습니다. 주인공인 아히루보다 오히려 더 눈에 띌 정도지요.

 

백조와 흑조,
그 고전적인 대치구도는 츄츄에서도 적용됩니다,
고전은 영원한 법이지요

왕자님에게 사랑의 고백을 할 수 없는 공주님. 사랑한다는 마음은 반드시 말로만 전해지는 것은 아니겠지요. 마지막화를 보면서 가장 크게 뒤통수를 맞은 게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요즘 애니메이션 답지 않은 너무나 소박하고, 진지한 이야기에 감동했고, 공주님이 왕자님을 바라보며 혼자 추는 파드되는 올해 보았던 그 어떤 애니의 캐릭터의 사랑고백보다 절절하더군요.

그냥 인형이 마음을 가진 인간을 흉내내본 것 뿐

끝까지 마음에 들었던 인형 에델 양. 결국 드롯셀마이어가 계산에 넣지 못했던 것은 자신이 창조한 인형 에델이 ‘사람의 마음을 분수도 모르고 가지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13화까지 해서, 알의 장은 끝났습니다. 마지막에 드롯셀마이어는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고 했고, 실제로 병아리의 장은 15분짜리로 계속됩니다. 왕자님과 공주님의 파드되로 엔딩을 맞이했고, 기사님도 운명을 잘 피했으니, 대체 다음 장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지 짐작도 가지 않는군요. 슬픈 표정으로 사라진 크레르는 어찌되는지, 아히루의 마음은 정녕 왕자님에게로만 향하는 것인지. 게다가 15분짜리로 26화라니, 열심히 챙겨봐야 할 나날들이 아찔하기만 합니다…;
‘프린세스 츄츄-알의 장‘은 올해 본 애니메이션 중에서 최고였다고 서슴치 않고 말할 수 있고, 만든 사람의 정성과 애정을 보는 사람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는 점에서 큰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클래식과 발레, 어찌보면 너무나 고상할 수 밖에 없는 소재를 가지고 이 정도로 여러 사람에게 친근하게 다가온 것은, 이 작품이 ‘애니메이션‘이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2002.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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