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우부메의 여름을 다 읽고나니 김형진씨가 이 망량의 상자까지는 읽어보라고 했었는데 드디어 올 여름에 이 책이 번역되어 나왔더군요.
우부메의 여름에서 그 교고쿠도의 장광설에 뜨억했으면서도 이번에 망량의 상자가 나오니 내용이 궁금해지더군요. 아마도 우부메 전반에 흘렀던 일본 특유의 요사한 귀기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예전에 이 책의 원본 두께를 직접 보긴 했지만 과연 라이센스판도 책 두께가 만만치 않습니다. 상하권 모두 5백페이지를 육박하니 책을 빨리 읽는 편인데도 거의 3일은 걸린 것 같네요.

내용은 곳곳에서 발견되기 시작하는 소녀들의 팔, 다리의 잔해와 전철 플랫폼에서 자살을 시도한 한 소녀 그리고 그것을 목격한 그녀의 친구, 정체가 모호한 신흥종교가 뒤섞여서, 바퀴는 각자 굴러갔지만 결국 그 위에는 하나의 수레가 얹고 달리고 있었다… 되겠습니다.
우부메의 여름에 비해 각 등장인물들의 색이 훨씬 뚜렷해져서 개성이 강한 한명 한명이 자신의 방식대로 각자 사건 속에서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 것도 하나의 볼거리였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교고쿠도의 장광설은 취향에 안 맞았습니다. -_-;

이야기의 흐름은 지난번과 비슷해서 초반은 좀 지루하고 중간은 좀 늘어지다가 마지막에 우르르 마무리되더군요.
전철 자살 미수 소녀(…) 가나코와 목격자 요리코 사이의 진실은 짐작했었지만 나머지 사건들은 의외의 방향으로 굴러가서 좀 놀랐네요(마지막의 여배우에 관련된 진실들은 전혀 예상 밖이었음. -_-).
제각각 굴러가던 사건을 하나로 모아서 연결하는 과정만큼은 일품이었습니다.

작가의 직업(디자이너) 때문인지 보다보면 글을 읽다보면 시각적으로 다가오는 면이 강하더군요(그런데 이야기 내내 잘린 팔다리들이 돌아다니니..-.ㅜ).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상자’의 이미지는 막판에 가면 정말 읽는 사람조차 숨막히게 하는 그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초자연적인 힘이 개입하여 사건이 일어났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가도 결국 진실은 ‘현실’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는 점과 그 ‘현실’을 감싸고 있는 이매망량의 부연 안개와도 같은 느낌에 전체적으로 음습하면서도 우울합니다만 그게 이 작가의 매력이 아닐까 싶네요.

이번주는 묘하게 사체절단 관련 책이랑 인연이 있는지(-_-) 며칠전에 대학로 사무실에서 가져다 읽은 소설책도 사체 절단이 나오는 무지 하드한 내용이 있었는데 이번 망량의 상자도 사체 절단이 주요 소재더군요(표지 보고 짐작은 했었지만…).
왠지 이것도 일본의 단골 소재 중 하나인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습니다.

4 responses

  1. 이봐요… ‘라스 만차스 통신’에서 절단되는 건 사체가 아니라 생체라구-0-;;
    그나저나 저거 다 읽었으면 좀 빌려주오-0- ‘별빛속에’ 신장판을 샀더니 저기까지는 도저히 손이 안 닿는다 ㅠㅠ

    1. 리츠코

      …………..엎어치나 메치나…. 사체나 생체나..-_- 저기서도 생체를 잘라서 사체를 만든다오.( –)

      다 읽었는데 언제 빌려가실래요?
      별빛속에 신장판이라… 강경옥은 옛날 작품 내는 걸로 먹고사는건가..-_-;

  2. 키딕키딕

    웃, 요즘 자꾸만 trick이 땡기던데 역시 선배님도…? 이런 종류의 음산하고 스물스물한 느낌… 조쵸~

    1. 리츠코

      나는 원래 이런 음산한 소재를 좋아하긴 하는데 이번 건 좀 하드했스. -.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