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주전에 도서관에서 빌렸던 책 한 권이 정말 너무너무 심하게 진도가 안 나가서 절반쯤 읽다가 결국 포기하고 반납한 김에 가볍게 읽으려고 고른 책입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는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런 것 치고 이상하게 이 작가의 다른 작품에는 또 손이 선뜻 안 가서 읽은 게 거의 없어요.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을 읽고 너무 마음에 들어서 다른 작품들을 찾아 읽고 또 읽으면서 왠지 처음 ‘용의자 X’를 읽을 때의 그 강렬한 재미마저 희석되는 기분이 들 때가 있는데, 그래서 화차를 읽었을 때의 그 강렬함이 다른 작품들로 인해 흐려질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다른 작품은 외면한 걸지도 모르겠네요.
어쨌거나.
별 생각 없이 골랐던 이 책은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었어요.
화차를 읽을 때도 생각했던 거지만 무엇보다 이 작가의 글은 잠시 눈을 떼고 쉴 틈을 찾을 수 없어요. 한번 잡으면 그냥 술술 읽으며 그대로 끝까지 가는 느낌? 제목만 보고 게임이나 가상현실 이야기일까 했는데 전혀 다른 소재더군요. ^^;
작품 속에서 ‘가족놀이’의 ‘딸’ 역할을 하던 여자애가 어느 동호회 게시판에서 매번 눈팅만 하다가 어느날 문득 자신이 외롭다는 이야기를 적어올리게 되고 그 글을 읽은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의 격려나 조언에서 위안을 얻으면서 게시판 사람들과 소통하는 재미에 빠져든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예전에는 피씨통신에 대화방들이 성행했고 요즘은 알음알음 사람들끼리 카톡으로 대화방을 만들어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러다보면 어쩌면 우리는 얼굴이 안 보이는 상태에서, 혹은 잘 모르는 사람에게 속에 있던 이야기를 더 쉽게 할 때가 있지 않나 싶어요. 처음에는 어려운데 어떤 계기로든 스스로 빗장을 한번 풀어버리면 나와 그리 가깝지 않아서 오히려 부담없이 이야기 할 수 있더라고요.
저같은 경우는 내 얼굴에 무슨 자백제가 있나 싶을 정도로 어이없을 정도로 잘 모르는 사람이 직접 하는 굉장히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듣게 되는 경우가 가끔 있어서 더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_-;(집에 정수기 점검하러 온 아주머니가 묻지도 않았는데 본인의 인생사-무려 남편과 속도위반으로 결혼하게 된 과정까지-를 고스란히 이야기하시는데 정말 심각하게 나한테는 무슨 자백의 오오라가 있는 걸까 고민했었음)
화차 때도 그랬지만 이 책에서도 작가는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걸 참 선명하고 또렷하게 짚는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서로간에 ‘보여주고 싶은 면만을 골라 보여주고 남에게서 얻고싶은 위안만 가려 얻는 위선적인 세계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런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은 어떤 면에서는 의미를 가진다’는, 인터넷에서 만나는 사람들간의 관계에 대한 시점에도 많이 공감했네요. 어쩌면 요근래 내가 하던 고민과 어느 정도 맞물린 이야기가 더 기억에 남는지도 모르겠어요.
슬슬 히가시노 게이고는 좀 쉬고 미야베 미유키 작품들을 찾아볼까 싶습니다. : )
작품 마지막에 등장인물 중 한명이 읊조리는 이 시는 참 깔끔하게 이야기를 마무리했는데 마음에 들어서 저장용으로.
이윽고 지옥에 내려갈 때
그곳에서 기다릴 부모와
친구에게 나는 무엇을 가지고 가랴.아마도 나는 호주머니에서
창백하게, 부서진
나비의 잔해를 꺼내리라.
그리하여 건네면서 말하리라.일생을
「나비」 사이조 야소
아이처럼, 쓸쓸하게
이것을 쫓았노라고.
R.P.G. –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선영 옮김/북로드 |
4 responses
아 그렇군요~~~^^
Yoonjung Jennie Lee 생각보다 책이 아직 많지는 않다오. 대출해야할지 모르니 미리 홈페이지에서 아이디 만들어두고 가는 걸 추천. 대출카드 만들려면 사이트 가입이 되어있어야하더라고.
HyeJung Oh 안그래도 여기 등장인물이 모방범이랑 크로스파이어에 나온 인물들이라길래 궁금해서 찾아보려구요. 스텝 파더 스텝도 적어둘게요! 추천 감사! ^^
미야베 미유키라면 뭐니뭐니해도 모방범! 개인적으로는 스텝 파더 스텝을 좋아함
언니 내일 한번 가 보렵니다..
책 구경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