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그 재판이 끝나고 저희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부모는 보통 자신의 아이가 남보다 ‘조금 더 특별한’ 어떤 면을 발견하면 그게 너무 기특하고 신기해서, 그 외에 신경써야 할 포인트들을 무심코 외면하거나 혹은 자기가 좋을대로 합리화하기도 한다. 이 책의 다카야 부모는 딱 이 경우였고, 어쿠스틱 라이프에서 말한 ‘모두가 나에게 객관적인 이 세상에서 끝없이 예뻐해주는 한 사람으로서의 부모’는 참으로 훈훈한 표현이지만 이 책에 대입하면 아이의 나이에 맞는 부모로서의 태도가 있는 법이다 싶기도.

한 작품을 두고도 읽는 사람마다 집중하게 되는 부분은 각자 다르기 마련인데, 내가 이 징하게 두꺼운(각 권이 7백페이지에 육박했다. -_-) 세 권을 읽는 내내 눈에 들어온 건 죽은 다카야와 그의 부모 그리고 다카야의 형 히로유키의 서로 평행하게 달리는 관계였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다카야 부부가 어렴풋이 이해가 갔다가 한 가족의 맏이로서는 다시 형인 히로유키에게 감정이 몰입되기도 하는, 참으로 분량으로도 내용으로도 감정적으로 지치는 책이었다.

마지막 권에서 모든 등장인물들이 ‘가시와기 다카야의 죽음’이라는 사건에 대한 이야기들을 모아나가다 후반부에 터지는 새로운 사실과 등장인물들의 감정, 행동들이 박력(?) 있어서 읽다가 울컥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작품 분량은 너무 길었다. -_- 대략 지금의 2/3 정도에서 좀더 속도감있게 풀었더라면 감흥이 더 컸을 듯.

현재까지도 역시 이 작가의 개인적인 베스트는 화차.

기간은 단 5일. 교사와 학생, 학부모, 형사, 기자 등 모든 관계자가 모인 교내법정에서 엇갈린 증언들로 사건이 새롭게 재구성된다. 학교라는 이름의 감옥 안을 유유히 떠다닌 고독, 반항, 자책, 질투의 감정. 사춘기라는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는 아이들이 각자 가슴속에 간직해온 비밀들. 이윽고 사건의 열쇠를 쥔 마지막 증인의 등장에 법정은 크게 술렁인다. 크리스마스 이브 밤에 벌어진 목숨을 건 위험한 게임의 종착지. 배심원들의 천칭은 과연 어느 쪽으로 기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