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좀 전부터 계획했던 일이었는데 이번 겨울에는 한달 동안 린양을 데리고 버클리에 와서 지내기로.
막판 출발 전에 한국에 독감이 돌기 시작해서 정말 조마조마했다..;
제일 큰 목적은 당연하지만(-_-) 린양에게 이런 세상(?)도 있다고 봬주기 위해서? 우리 부부가 신혼에 일본에 살았을 때 느낀 게 며칠 여행을 하는 게 아니라 좀 장시간 그 나라에서 살아보는 게 사람의 사고방식에 꽤 많은 영향을 준다는 점이어서 린양에게도 기회가 된다면 한번 경험시켜보고 싶었다.
이곳 캠프에 3주 정도 등록해둔 상태.

옆사람은 출장으로 자주 오갔지만 나도 린양도 비행기 타고 장거리 여행도 처음, 시차가 크게 벌어지는 곳도 처음.
결과부터 말하자면 장거리 비행에 제일 맛이 간 것도 나, 시차 적응 못하고 며칠째 골골대고 있는 것도 나….ㅠ.ㅠ
비행기 탄 동안 자주 움직이지 않는 채로 식사를 했더니 그걸로 제대로 위장이 맛이 가서 회복하는데에 거의 이틀 걸린 것 같다;; 시차도 아직 몽롱하고.

맨날 가까운 일본만 들락날락 해서 몰랐는데 입국 심사하는 곳에서 ‘여기에 무슨 여행을 한달이나 왔느냐’, ‘직업이 뭐냐’, ‘여기 있다는 친구는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이냐’고 너무 구체적으로 진지하게 물어보는데 동공지진.(니네 나라 집안이 늠 추워서 한달만 지나면 광속으로 나갈거야..ㅠ.ㅠ) 마지막 나오는 길에 짐 체크하는 사람이 너무나 훌륭한 발음으로 ‘순대’ 안 가지고 있지? 라고 물어서 한국 사람들이 순대를 얼마나 들고 다녔으면… 했다. -_-

숙소는 옆사람 회사와도 가깝고 린양 캠프와도 가까운 곳에 집을 한 달 빌렸는데 세 식구 살기에는 딱 적당한 정도. 동네에는 대부분 그리 커보이지 않는 작은 단독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다만 정말 오랜만에 ‘아, 맞다. 온돌이 안 되는 집은 참 추웠지…’하고 체감 중.
여기가 올해 유래없이 추워서 기온이 6도~15도 사이를 오락가락 하는데(…) 우리가 출발하는 날 한국이 영하 9도였으니 밖이 추운 건 모르겠으나 문제는 실내 기온이 밖이랑 거의 비슷해서 신혼 때 일본에서 살던 집이 생각난다. -_-

식생활이 완전 다른 동네라 처음에 수퍼나 마트 갔을 때는 도대체 뭘 사야하는 건지 눈에 빨리 안 들어와서 멘붕이었는데 주말동안 근처 수퍼 몇군데를 좀 다녀보니 이제 좀 적응이 되는 듯도. 주말에 유니클로와 대형 마트를 들러 실내용 털내피 후드 집업과 후리스 수면바지를 산 후에 그나마 마음의 안정을 얻었다. 린양 실내복은 미리 유니클로에서 두터운 걸로 사서 왔는데 여기 유니클로 가니 룸웨어는 안 팔아서 미리 사오길 잘했다고 안심했고.

미국 하면 광활한 넓이와 차 없이 절대 못 다닐 문화를 생각했는데 의외로 이 동네는 고만고만하니 걸어다닐만하다.
린양 캠프까지도 걸어서 15분, 마트도 걸어서 10여분 거리에 하나, 대형 마트들도 차로 10분 거리에 꽤 있고.
그리고 인상적인 건 마트나 식당의 점원들이 의외로 상대방이 멀쩡한 영어를 쓸 거라는 기대를 별로 안 하고 있다는 느낌?;; 이건 수인님 말로는 이 동네의 특성이라고…; 어쨌거나 나처럼 말이 제대로 안 나오는 사람한테는 그 분위기만으로 훨씬 위안이 되더란. ㅠ.ㅠ

오늘부터 린양 캠프 시작이라 데려다주고 집으로.
갔다오면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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