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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 삼귀

이번에도 쉽지 않다.

이 작가 작품은 화차 이후로 장편은 호흡이 너무 길어서 읽을 때마다 허덕허덕하다 보니(그러다 결국 관둔 것도 몇가지 있고) 차라리 이 에도 시리즈는 가볍게 읽을 수 있어 좋아하는데 매번 책을 잡을 때마다 등장하는 여자들이 모두 ‘오’로 시작해서 글자 모양을 눈에 익히듯이 문장을 읽어나가는 나같은 사람한테는 매번 제일 큰 허들이다.

이번 작품은 배경이 되는 미시마야 안주인은 타미고 이 집 조카이자 여주인공은 치카, 하녀는 시마와 카쓰다(…) 오타미와 오치카까지는 괜찮았는데 오시마와 오카쓰는 아무래도 마지막까지 정확하게 캐릭터를 구분하지 못한 것 같다.

에도의 주머니 가게 미시마야에는 ‘흑백의 방’이라는 객실이 있고 그곳에 한 번에 한 명의 이야기꾼을 불러 그 사람으로부터 신기하거나 무서운 이야기를 주인공 오치카 혼자 듣고, 들은 걸 밖으로 내보지 않고 혼자 묻어버리는 ‘괴담 자리’라는 독특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데, 세상의 이치에 맞지 않는 기이한 일을 겪었는데 주변에서 믿어줄 것 같지 않고 그럼에도 혼자 가지고 있기에는 갑갑한 사람들에게 꽤 괜찮은 해소법이 될 법해서 흥미로웠다.
교고쿠도 시리즈처럼 ‘알고보면 세상에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결론이 아니라 실제 괴담들이고 그래서 어딘가 이마 이치코의 백귀야행 같은 분위기.(애초에 작가가 백물어를 생각하고 쓴 작품이라고 하니)

이번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든 건 두번째 이야기인 ‘식객 히다루가미’.
도시락집 이야기라 온갖 먹을 것들에 대한 묘사도 대단하지만 근래 본 이야기 중 가장 사랑스러운(?) 부부가 등장해 요괴를 떠안고도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그 요괴를 써먹거나 잘 해주기보다 정이 들어버리는 스토리 라인이 너무 좋았다.

모두 네 개의 에피소드로 제각각 슬프고 한스럽고 가슴이 먹먹한데 다 읽고 나서 생각해보면 가장 처량하고 안쓰러운 건 자신의 괴로움을 잊으려 다른 이들의 무서운 이야기를 들어주는 주인공 오치카가 아니었을까.

사람은 이야기한다. 이야기할 수 있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즐거운 일도 힘든 일도. 옳은 일도 잘못도.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에게 들려준 일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덧없는 목숨을 넘어 이 세상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