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넷플릭스 들어갔다가 제목에 혹해서 클릭했는데 완전 취향이었던 BBC 다큐멘터리.

옆사람이 지나가다 보더니 ‘갤러리 페이크’ 같다고 하던데 그 작품은 내가 안 봐서 모르겠고 누군가 집에 있는 나름 명화라고 믿고(?) 있던 그림 중에 ‘진짜인 거 같은데 구매 출처가 분명하지 않다’든지 ‘서명이 없다’든지 이런저런 이유로 진품으로 인증받지 못한 것들을 가져와서 이게 진품인지 가품인지 알아봐달라는 의뢰를 받으면 전문가 세 명이 전방위로 조사해서 결론을 내는 내용.

4번째 시리즈만 우리나라에 올라와 있고 전체 4화 구성인데
1화는 의뢰인이 자신의 아버지가 산 L.S 로우리의 작품이 진품이라는 걸 증명해달라고 맡겼는데 나는 그 사람이 가져온 이 처음 듣는 작가의 작품이 묘하게 다 마음에 들었다.
https://www.wikiart.org/en/l-s-lowry
주로 공장지대, 산업사회의 단면을 그린 20세기 중반 영국의 ‘산업풍경화’ 작가라고. 언뜻 보면 아기자기한 게 동화 일러스트 같으면서 어딘가 회색빛이 도는 느낌이 좋았다.

개를 동반한 여인 Lawrence Stephen Lowry

2화는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성(…) 관리비 때문에 돈을 마련해야 하는데 집안 어른이 예전에 모네의 화실에서 산 르누아르의 작품이 진품을 증명받고 싶어 왔고
3화는 영국 어느 시골 교회에서 자기네 교회에 오래 전부터 걸려있던 대형 종교화가 어떤 작품인지 알고 싶다며 의뢰,
4화는 삼촌에게 물려받은 포도 농장 증여세(…)를 내려면 돈이 필요해 집에 있던 그림이 처칠과 머닝스의 진품인지 확인해달라는 사람.

보고 있으면 1700년대 시골 동네 성주의 유언장부터 관련 기사까지 싸그리 자료로 남아있는 데에 놀랍고, 정말 그림 한 장 달랑 들고 깜깜절벽인 상태로 기어이 작가를 추적해내는 것도 흥미진진하다.

마지막에 작품의 진품 여부를 결정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조심스럽기 그지없는데 생각해보면 저런 명화 시장에는 위조범들이 뿌리는 진짜같은 가짜들도 잔뜩 나와 있고 모든 화가들이 자기 작품을 그릴 때마다 하나하나 인덱싱을 한 것도 아니니, 어느 집 다락방에서 유명한 작가 작품’처럼’ 보이는 신작이 튀어나오면 그게 진품일지 가품일지는 타임머신 타고 돌아가서 작가에게 물어보지 않는 한 오직 전문가의 결정에만 달려있는 법이더란.(물론 그 사람들이 충분히 근거를 제시할 수 있을만큼 조사하고 연구한 후에 결정하는 것이지만)
근데 그림을 그린 화가도 ‘사람’이고, 진품인지 가품인지 애매한 작품을 앞에 두면 그 화가가 갑자기 무슨 변덕으로 평소랑 다른 그림을 그린 적이 혹시 있었을지 어찌 알까.(4화에서 ‘처칠이 그린 것치고 사람을 너무 잘 그려서 가품인 것 같다’는 말에 빵 터졌음)

그래서 2화에서 두 르누아르 연구소가 기싸움 하느라 고집을 부리는 걸 보면서 좀 아이러니하기도 웃기기도 하다.

미술이나 역사 이야기 좋아하는 사람이면 재미있게 볼 듯.
https://www.netflix.com/title/81032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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