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올해 하반기 내 독서 패턴 중에 가장 큰 변화는 어쩌다보니 히가시노 게이고에서 벗어나(요즘 이 아저씨 작품 중에 별로 땡기는 게 없다) 평소에는 취미도 없던 과학서를 몇권 붙잡았다는 점?

책을 고르는 기준이야 보통 트위터나 티비 등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들 위주인데 그 중에서 이번에 잡은 건 이번 알쓸신잡에 새로 들어온, 모님 표현을 빌자면 ‘조근조근 말하는 공대 오빠’ 스타일 김상욱 교수의 ‘김상욱의 과학공부’

유시민도 방송에서 ‘자신이 학교 때 이 사람을 만났으면 좀더 물리를 다정하게 대했을텐데’라고 했듯이(저때도 물리 선생님은 쟤물포였나보다) 이 분이 설명하는 걸 듣고 있으면 그래도 최대한 ‘쉽고 가깝게’ 이해시키려는 노력이 보여서 혹시 책도 그렇지 않을까 해서 도서관에서 빌려봤다.
최근 신간인 ‘떨림과 울림’은 역시나 대여하려면 예약줄을 서야 하고 이 책도 같이 예약을 걸었는데 그나마 얘는 빨리 순서가 돌아온 모양.

과학을 못해서 이과도 못간 인간인데 살다살다 내가 내 의지로 ‘과학공부’라는 제목의 책을 손에 드는 날이 오다니 미디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책의 결은 좀 특이해서 초중반까지는 과학전공자가 쓴 책이라기보다 과학을 잘 아는 인문계 작가 느낌? 여러 예시들도 굉장히 유행과 흐름을 잘 타면서 등장해서 이 작가가 공부만 하는 사람이기보다는 소설이든 영화든 여러 방면에서 접하고 그걸 자신의 지식을 설명하는 데에 잘 쓰고 있다.

후반으로 넘어가면 본격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이 책을 읽는 사람에게 양자역학에 대해 이해시키리라’에 돌입하는데 철학에서 영화, 소설, 미술까지, 다종다양하고 가능하면 사람들이 많이 접했을만한 소재를 끌어와서 정말 열심히 설명한다.

너무 열심히 설명해서 읽다보면 잠시 뭔가 아슴하게 알 것도 같다 싶다가도 역시나 너무나 깊고 오묘한 그 세계에 다시 동공이 흐려지며 ‘아 역시 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고 싶어진다는 게 문제.(역시 저에게 과학은 무리인가봐요…)

열과 성의가 넘치는 과외 선생님이 최선을 다해 설명해주고 있는데 도저히 알 수가 없을 때 이런 기분일까.🤔

비록 다 이해하는 데에는 실패했으나 참으로 ‘다정한’ 과학서였고 신간도 아마 손에 들어오면 기꺼이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우주에도 의미는 없다. 당신이 멋진 석양 속에서 프로포즈를 하고 있을 때, 붉은색 빛이 공기 입자와 산란을 덜 하고 있을 뿐이다. 의미는 처음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나중에 부여하는 것이다. 이해를 초월한 현대미술에서는 의미를 찾는 것조차 당신의 몫이다. 양자역학으로 기술되는 우리의 우주가 그랬듯이.

문제는 인공지능 자체가 아니라, 거기서 얻은 이익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이다. 인공지능이 우리의 일자리를 대체할까 걱정하기보다 인공지능을 소유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할까를 걱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b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