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란 참으로 신기해서, 분명히 내용은 좋은데 도무지 눈에 붙지 않는 문장 때문에 책 진도가 안 나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유연한 문장 덕에 머리를 비운 채로도 신기할 정도로 쉽게 훌훌 넘어가는 책도 있다. 이 작가의 글은 단연 후자에 속하는데, 신문기사에서조차도 멀쩡한 한 줄 찾기 어려운 시절에 오랜만에 정돈된 문장으로 꽉 찬 책 한 권을 읽어내리고 나니 요즘 블로그에 뭔가 쓰려고 창을 열고 앉아도 도무지 흥이 나지 않던 내 머릿속 타래들이 조금씩 실마리를 내밀고 있었다.
재미있는 점은 실제 허브의 일종이자 꿀플과 숙근초인 민트는 아무리 뜯어봐도 전혀 민트색이 아니라는 것이다.
p.53
민트나 애플민트, 오렌지민트, 라벤더민트 그 어떤 민트를 찾아봐도 길가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풀의 빛깔을 하고 있다.
(중략)
그렇다면 녹과 청 중간의 특정 색을 민트색이라고 부르는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후각으로 감지한 민트 향을 이미지화한 것이다. 이 지점이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제목 그대로 작가는 말을 ‘고르고 골라’ 지면을 살뜰히 채웠고 일상의 작은 일들을 놓치지 않고 꼼꼼히 풀어냈다. 리듬처럼 흐르는 문장도 좋지만 그 문장을 채운 다양한 단어의 향연이 더 큰 매력.
고민하지 않고 내뱉은 말들이 난무하는 세상에 저 제목 자체가 가장 절실한 미덕 아니겠나. 고르고 골라, 신중한 말들이 그립다.
읽자마자 마음에 들어서 린양에게 넘겼는데 린양도 호평. 본인과 감성이 맞았다는데 그 이야기를 들으며 잠시 씁쓸히 웃었다.
나는 내용도 문장도 너무나 취향이었지만 감성만큼은 간간히 다소 과하게 다가와서 마치 빨간 머리 앤의 이야기를 듣는 마릴라의 기분을 잠시 느꼈었는데 생각해보니 린양은 앤의 나이, 나는 마릴라의 나이에 가깝지 않은가.
나이는 먹어도 마음은 늙고 싶지 않은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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