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밥 먹으면서 세 식구가 모여앉아 드라마를 한 편씩 보고 있는데, 작품만 잘 고르면 보면서 서로 이야기할 거리도 생기고 다 보고 나면 서로 알아들을 수 있는 드립치는 재미도 있어서 나쁘지 않다.
맨 처음 보기 시작한 건 내가 보던 굿 닥터였는데 시즌 1~4까지 정주행하고 나니 이번에는 옆사람의 영업(…) 차례가 되어 결국은 보게 된 「비밀의 숲」.
몇년 전에 옆사람이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 너무 재미있다고 같이 보자고~ 보자고~ 그렇게 꼬셨는데, 단편으로 에피소드가 끝나지 않고 호흡이 긴 드라마를 안 좋아해서 거의 안 보는지라 외면했건만 결국 이렇게 완주하게 됐다.
특히나 오늘은 마지막 세 편만 남았는데 제일 클라이막스라 결국은 세 식구가 시간 맞을 때마다 모여서 연이어 다 몰아서 보고 났더니 어느새 해가 다 져 있더란.
이래서 성질 급한 나는 호흡이 긴 드라마가 힘들어…
이미 4~5년이 지난 드라마이니 그 사이에 평판은 익히 들었고 실제로 봐도 명불허전이었다.
누구 하나 연기가 부족한 사람도 없었고(영은수 역 배우 같은 경우는 그 이후 작품들보다는 약간 아쉬웠지만) 무리한 러브라인 없이 담백한 두 주연의 케미도 좋았고 차곡차곡 쌓아가는 이야기 전개나 쉼없이 아슬하게 몰아치는 긴장감도 발군.(그나저나 배두나는 본인 말마따나 고르는 작품마다 참 많이 뛰어다녀야 해서 체력 관리를 잘 해야겠더란…)
성공한 드라마들이 많이들 그렇지만 역할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살아 움직이는 게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어쩌면 선거를 앞두고 대환장파티인 지금의 현실이나 드라마 속의 이야기나 엉망진창이긴 마찬가지라서 한층 더 몰입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드라마의 (재벌 아닌) 일상의 등장인물들은 누구나 조금씩 ‘나’의 모습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온전히 욕할 수 없지만 보면서 갑갑하고 그런 것 같다. 정의롭고 싶어도 먹고사니즘에 동료 등을 밀어 내 앞가림을 하는 사람을 보며 마냥 욕할 수 없고 그럼에도 그 사람이 나중에는 곤경에 처한 동료를 잊지 말고 조금은 챙겨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보게 된다.
굿닥터에 바로 이어서 봤더니 황시목이 왠지 검사계의 숀처럼 보여서 나 의외로 사회성이 부족한 캐릭터가 취향이었나? 했는데 더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의 감정이나 주변 상황에 쓸데없이 깊게 이입하는 편이라 오히려 주인공 성격이 건조한 쪽이 보기 편한 모양이다.
CSI나 의학 드라마 같은 장르물을 좋아하는 이유도 짧게 끊어지는 이야기, 깊지 않은 감정선이 부담 없어서인 것 같고.(한번 지나간 피해자, 환자 다시 볼 일은 잘 없으니)
저게 어느새 2017년 작품이니 윤여정 배우의 어느 외국 인터뷰 기사글처럼 ‘지금에 와서 외국에서 한국의 드라마에 관심을 가지는’ 게 아니라 우리는 그동안 꾸준히 좋은 작품들을 만들고 있었고 그게 이제서야 더 넓은 세상의 눈에 띈 게 아닐까.
얼마전에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라고 올라온 영화 한 편으로(제목도 가물하다. 12시간인가 13시간인가…) 또 시간낭비 하고 나니 그렇게 돈을 공중에 터뜨릴거면 차라리 우리나라에 좀더 투자를 해줘도 밑지는 장사는 아니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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