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그럼 시작할까요. 악마의 술을 마시고 불사를 얻게 된 사나이. 그 가엾은 자가 걷게 되는 너무나도 고독한 이야기. 무대는 금주법 시대의 뉴욕. 별안간 나타난 ‘불사의 술’을 둘러싼 기구한 운명, 거기에 말려들고 만 사람들의 나선의 이야기를….”

작년 NT Novel 발매작들은 거의 1차로 한번에 오퍼를 넣은 작품들이고 올해 나오는 신작들은 작년에 2차로 넣은 것들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처음 오퍼를 넣을 때는 무슨 정신으로 어떻게 넣었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날 만큼-당시에는 모두 기준이 있었지만- 일도 익숙치 않았고 작품 자체에 대한 자신감도 약한 편이었다면 2차 오퍼들은 그 사이에 계속 일본쪽 동향도 파악하고 일본의 평가 사이트들의 감상도 둘러보며 고르고 고른 작품들인 편이다. 그리고 1차 오퍼 때 개인적으로 괜찮다 싶었던 작가들의 다른 작품들의 비중이 컸다(나름대로 재등용이라고 해야 하나).
그 중에서 이 바카노는 전격대상을 받은 신인의 데뷰작으로, 읽어본 사람들의 평이 상당히 괜찮았다. 개인적으로는 일러스트에서도 상당히 구미가 당겼다.

마피아, 금주법, 그 시대의 뉴욕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거의 열광할 만한 이야기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최근의 일본 라이트 노벨계의 소위 ‘모에‘ 분위기에 좀 싫증이 난 사람에게라면 그야말로 추천할만 하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진행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지라 읽는 내내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장면들의 연출이 상당히 영화적인데, 작가의 글실력도 탄탄한 편이라 장면 묘사도 충실하고 유머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꽤 그당시 뉴욕의 분위기를 잘 그리고 있다. 만약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아무리 봐도 어딘지 ‘일본‘ 냄새가 난다면 작품을 보면서 참으로 고역이지 않을까. 작가가 술술 풀어가는 이야기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마치 내가 그들의 ‘나선‘에 말려들어간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렇지! 이곳 뉴욕에서 마지막 대사업을 벌이고, 앞으론 마이애미 같은 데서 편안하게 지내는 거야. 그럼 우리 사전에 위험이란 단어는 없어지는 거라고!”
“없어지는 거야!”
“커다란 집을 사자. 거기에 풀장을 만들고 아침부터 밤까지 헤엄치는 거야.”
“밤엔 추워.”
“괜찮아, 스토브를 열 대 정도 켜 놓으면 풀장도 따뜻해질 거야.”
“열 대나! 굉장해, 굉장해. 아랍 임금님도 그렇게는 못 켤걸!”
사막의 밤이 추운 건 사실이나 참으로 돌가루 날리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산만하지는 않고, 차분하게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진행되기 때문에 보는 사람이 특별히 헤맬 일도 없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캐릭터는 역시 필로. 엽기 커플의 경우는 좀 더 많이 등장했다면 짜증이 났을 것 같은데 적당한 선에서 작품의 분위기를 풀어준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았다.

이 작품에서 무엇보다 마음에 든 건 마지막에 책을 덮으며 입가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떠오르면서 ‘그래, 결말이 좋았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끝이 괜찮았다는 점이다. 이후 작품 활동이 상당히 기대되는 작가 중 한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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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responses

  1. 장미의신부

    헉, 그렇다고 덤앤 더머랑 비교를 하시다니…^^; 민폐 캐릭터는 싫어하지만 이 푼수떼기 커플은 밉지가 않더군요. 바보짓은 지구를 구한다…랄까, 이렇든 저렇든 결국 이들의 푼수짓이 사건을 해결하게 만드니…^^; 뭐, 개인적으론 2,3권의 차장 아저씨를 가장 좋아합니다만…(무임승차를 하면 안된다는 교훈을 주는…쿨럭…)

  2. 리츠코

    크로이츠님 홈 대문을 보니 뒤쪽 가도 저 커플은 여전히 들쑤시고 다니나 보더군요. 꼭 둘이 합쳐 IQ 100이라든지 덤앤 더머같은 분위기…-_-;;;

  3. 크로이츠

    저 커플 최고입니다. 으흐흑ㅠ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