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베르나르 베르베르(이 사람 이름은 말하다 보면 혀 꼬일 것 같음)의 소설은 개미와 타나토노트를 읽었었는데, 특별히 어떤 강렬한 감상은 없었지만 ‘실제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참 말이 되게 보이도록 현혹시키는 글재주를 가졌구나’ 하는 생각은 했었군요.

이번의 이 단편집 ‘나무’에도 역시 작가 특유의 그 술술 넘어가는 말솜씨가 주를 이루고, 작가 본인이 말하기를 장편 소설을 쓰는 중간 중간에 지겨워지면 한편씩 썼던 단편이라고 하는 만큼, 그야말로 쉬어가는 기분이 납니다.

그런 만큼 ‘단편집’이라고 하는 넓은 시각에서 봤을 때 안에 들어있는 작품의 퀄리티 면에서는 약간 아쉬움이 남습니다. 오헨리나 모파상의 단편들과 같이 어떤 마지막에 강렬한 인상이 남는 작품으로서의 단편은 몇 없고 그야말로 개인이 짧은 휴식 시간에 확장해나가는 상상의 나래의 파편일 뿐이더군요. 베르베르의 이름값이 아니었다면 과연 이 정도의 단편을 모아서 책으로 묶을 수 있었을까요..;

그래도 작품 중에서, 모든 가전제품들이 인공지능을 가지고 사람처럼 말을 하고 알아서 행동하는 세상을 배경으로 그린 ‘내겐 너무 좋은 세상’이나 타임 슬립이 가능한 미래의 사람들이 과거로 바캉스를 떠나면서 일어나는 사건인 ‘바캉스’ 같은 이야기는 아이디어도 재치있고 내용도 꽤 재미있었습니다. 호흡이 긴 소설들을 읽다가 오랜만에 짧은 단편들을 접하니 부담없이 술술 읽혀서 나름 새롭네요.

ps.책은 일반 소설책 크기인데 비해 종이를 약간 가볍고 거친 것을 써서 책 무게가 가볍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가지고 다니면서 읽기에 부담이 없더군요. 이왕이면 문고판 정도로 나왔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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