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일본에 오면서 좋아하는 책만 몇 가지 가져왔었는데 읽었던 책을 읽고 또 읽고 하니 슬슬 지루해지더군요. 원서 책들은 아무래도 해석하랴 내용 파악하랴 정신없어서 보고 나면 어디까지 제대로 본 건지도 까리하고 말이죠.
마침 요근래에 지난번에 한국 갔을 때 가져온 망량의 상자를 다시 읽고 있었던 참이라(두꺼워서 읽고 또 읽어도 덜 지겨움..;) 고쿄쿠도 새 시리즈가 나왔다길래 인터넷으로 주문해봤습니다.

우울한 세키구치, 무대포 기바, 그리고 이번에는 이사마까지, 모두 우다가와 아케미라는 여인의 혼돈스럽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 수 없는 과거와 여기 저기에서 산발적으로 등장하는 해골에 관련된 사건들 속에서 우왕좌왕하며 휩쓸립니다.

마지막에 여러 사건들을 묶어 나가는 과정은 여전히 흥미진진한데다가 드라마성이 진한 점은 마음에 듭니다만 망량의 상자에 비해 사건을 서술하는 분량이 너무 길어서 장황한 데다 이번에도 역시나 짠 하고 나타난 교고쿠도는 만능하게 사건을 해결! 이라는 구조가 슬슬 식상하긴 하네요.(뭐 애초에 그래서 이 책이 교고쿠도 시리즈이긴 하지만)

객실에는 세키구치와 낚시터 이사마야의 주인이 앉아 있었다.
세키구치는 여전히 기운 없음을 뭉쳐서 굳힌 듯한 음침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이사마야는 이사마야대로 인도의 마술사 같은 알 수 없는 차림으로 유유히 앉아 있다.
주인은 도코노마를 등지고, 마치 마을자치회의 사람들이 전부 죽기라도 한 것처럼 떨떠름한 얼굴로 책을 읽고 있었다.
“네놈들, 무슨 회합이야? 세상에는 밝은 화제가 하나도 없다는 걸 서로 확인하고 있는 거냐?”
그렇다면 기바도 동료로 끼워 주었으면 좋겠다.

성격은 제각기 달라도 기본 정서는 ‘음침’이라는 공통 분모를 가진 이들이 모이면 세상의 기이하고 불행한 사건은 다 몰려드는 듯하네요.(김전일 옆에 있으면 살해당한다, 와 비슷한 법칙일지도. -_-) 그래서 유일하게 그 분모가 다른 탈탐정(?)이 한층 돋보이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에노키즈는 망량의 상자에서보다 등장신도 늘어나면서 그 발랄함(?)이 점점 더 마음에 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