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나절에 타임라인에서
https://www.yearendlists.com/2022/bbc-culture-the-20-best-films-of-2022
이 기사를 봤는데 마침 웨이브에 에브리씽 에브리웨어(이하생략)이 올라온다고 했던 게 생각나서 틀었다.
평론가들의 극찬과 추천 영화 목록 상위에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오히려 이 영화를 감상하는 데에 방해가 됐던 것 같다.
보는 내내 ‘언제부터 대단해지는 거야’ 라고 생각하며 봤는데 영화 중반쯤 되니 마치 ‘저 임금님은 벌거벗었다’ 라고 말하지 못하는(벌거벗은 사람이 나오긴 하더라) 기분이 들었다…;
다 보고 나니 결국 영화는 B급 감성의, 내가 예상한 ‘예술적’인 면에서 훌륭한 영화는 아니었고 그럼에도 좋은 면이 많은 작품이었다.
멀티버스라는 소재를 화면으로 옮기면 어수선해지기 쉬운데 이야기를 따라가기 편했고 예전 중국 코믹(…) 액션 영화 느낌의 액션을 마음껏 볼 수 있어 좋았다. 뻘한 개그 감각은 나는 좀 별로였지만.
요근래 양자경이 나오는 작품마다 맡은 역들이 평범한 게 없어서(우주 제국의 황제라든지 판타지 세계의 최후의 일족이라든지…) ‘평범한 엄마’ 모습이 오히려 신선했지만 내용은 역시나 평범하지 않았고 이 영화야말로 ‘대혼란의 멀티버스’라는 수식어가 딱 맞지 않나 싶다.
요즘 멀티버스라는 소재가 인기를 얻는 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 삶이 팍팍해서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보다 나아졌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 아닐까.
주인공 에블린 단 한 명의 삶에도 그렇게 수많은 갈림길들이 존재하는데 좀더 넓게 보면 우리 하나하나의 삶에는 얼마나 무수한 갈림길들이 있었을까.
그 순간의 선택이 옳았든 틀렸든, 어쨌거나 끊임없이 갈라지는 길 중 하나를 고르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혹여 미련이 남는 선택이 있었더라도 굳이 과거의 그 분기점을 자꾸 돌아보지 말고 ‘지금’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보자고 말하는 영화.
장면장면마다 보는 내내 어이는 없었지만, 즐거웠다.
+멀티버스에 대한 이야기 중에 좋아하는 건 테드 창 단편집 ‘숨’에 있는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다른 갈림길이 있더라도 ‘인간’ 자체는 변하지 않고 그 끝에 기다리는 결과도 그리 다르지 않다는 메시지가 좋더라.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