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라인에서 제목을 자주 본 작품이라 틀어봤는데 고요히 흐르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어서 정보를 찾아보니 감독은 드라마 파친코의 감독 코고나다(한국계 미국인)이었고 낯이 익었던 ‘양’은 엄브렐러 아카데미에서 벤 역의 저스틴 민이었다.
감독도 배우도 한국인인데 정작 안드로이드는 중국인(안드로이드에 국적이 있는 건 아니지만)인 점이 의아했는데 거기에 대한 감독의 인터뷰가 있었다.
Q. 한국계 미국인 감독, 한국계 미국인 배우(저스틴 H. 민)가 함께했지만 <애프터 양>은 중국인 안드로이드에 관한 이야기다. 한국인의 고유한 헤리티지보다는 ‘아시아성’에 대해 포괄적으로 논의하고 싶었던 걸까.
‘애프터 양’ 코고나다 감독, “그게 무엇이든, 세상의 일부가 되어”
A. 디아스포라가 된다는 것은 나 자신을 끊임없이 조국 바깥에서 바라보도록 만든다. 양이 중국인이란 정보는 진짜라고 볼 수 없다. 안드로이드 양은 우선 아시아인의 외양으로 제조된 다음, 여러 회사를 거치면서 제이크 가족에게 중국인 역할을 하도록 설정되었을 뿐이다. 미국인이자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나 같은 사람들의 처지도 일면 그러하다. 우리는 국적이나 민족과 관계없이 우선 아시아인으로 묶여 분류된다. 아시아계 디아스포라들이 서로 다른 나라에서 왔음에도 많은 경험을 공유하게 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고 자연스럽게 서로 상호적인 정체성이 형성된다. 양이 제이크에게 자신도 차에 대한 진짜 기억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이 또한 전세계의 많은 디아스포라들이 자신의 헤리티지에 대해 느끼는 갈망과 비슷할 거라 본다.
어느 날 갑자기 작동을 멈춘, 가족과도 같은 안드로이드.
당연히 ‘죽음’보다는 ‘수리’를 우선하며 방법을 모색하지만 제이크 가족은 그가 보내온 기억들을 바라보며 서서히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존중해줘야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개인적으로는 마지막에 제이크 부부가 양의 기억을 ‘보존’하는 데에 의미를 두는 게 아쉬웠다. 양의 기억은 온전히 그만의 것이고 과학적으로 어떠한 의미가 있든 그대로 ‘사라질’ 자격도 있지 않을까. 과연 양은 자신의 기억이 영원히 남길 바랐을까.
살뜰히 자신을 챙겨주던 양이 갑자기 사라지자 방황하는 미카와 ‘양을 원래의 자리로 데려오고 싶어하는’ 제이크 부부를 보며 며칠 전에 읽었던 에세이가 생각났다.
어떤 것도 그 사람을 잃은 나를, 그 사람을 잃기 전의 나로 돌아가게 만들지는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의 애도 과정은 그렇게 새로운 나를 만나는 과정이다.
내 친구, 희수 by 정신과 의사 나종호
몇년 전에 처음으로 가까운 사람을 갑작스럽게 잃고 그 슬픔이 ‘완전히’ 사라지는 날을 기다렸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지금도 간헐적으로 한번씩 슬프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리우리라는 걸 이제는 안다.
영화 제목인 After Yang을 빌자면, 양이 없어진 후 때로는 문득문득 그립고 그럴 때마다 가슴이 아릿하겠지만 이 가족에게도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참으로 속삭이듯 유한함과 무한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였다.
+사실 이 영화의 한줄 요약은 ‘중고 제품 싸다고 덥썩 사지 말자’가 아닐까 싶긴 하지만…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