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시민론>의 토마스 홉스는 인류가 ‘사회’를 형성하기 이전의 ‘자연 상태’라 부를 수 있는 환경에서는 제각각 각자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움직이며 서로가 서로를 살해하는 무시무시한 상황만 계속될 것이고 이런 상태를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이다’라고 표현했다.
이것은 본래 로마의 희극 작가 플라우투스가 한 말로, <아시나리아>라는 작품에서 “인간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낯선 이에게는, 인간이 아니라 늑대이다.” 그로부터 약 1700년 뒤에 에라스뮈스가 이 말을 <격언집>에 수록한 걸 보면 꽤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 모양.

홉스는 인간의 ‘사회 계약 이전의 상태’를 묘사하는 데에 이 말을 빌어왔다. 낯선 이, 그러니까 계약과 합의에 바탕을 둔 공동체 밖에 있는 인간에게 인간은 서로 늑대일 뿐이고 세상에는 죽음의 공포만이 가득하다.
그리하여 인간은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각자 소유한 본래적 권리의 일부를 양도해 국가라는 우월한 지배 권력을 만들고 개인의 이해충돌을 조정할 수 있는 최종적이고 절대적인 권한을 이 국가에 부여하면서 사회와 국가가 탄생했다.

라는 이야기를 참으로 오랜만에(거의 전공 수업 들은 이후 처음인 듯?) 읽고 있자니 작금의 인간은 다시 늑대로 돌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책은 그리 두껍지 않았는데 내용은 쉽고 알찼다.
철학이란 머리 아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 정도. 카톡 상태 메시지에 걸 만한(…) 멋진 말도 많이 나온다. : )
정말 글을 잘 쓰는 사람은 길지 않은 분량 안에 자신의 생각을 얼마든지 풀어내는 법인가보다.

“인간이 인간을 돕는 일은 신적인 것이다.”

라틴어로 적으면 Deus est mortali iuvare mortalem.입니다. 여기서 인간이라고 번역한 라틴어 단어는 바로 mortali, 영어의 mortal과 같은 의미죠. 그러니까 의역하면, 필연적으로 죽을 존재가 다른 죽을 존재를 도움으로써 죽지 않게 된다는 뜻이겠지요. 그에 따르면 유한한 존재가 자신의 유한성을 넘어서는 방법은 유한한 존재들끼리 손을 잡고 연대하며 서로 돕는 일밖에 없습니다. 유한한 존재인 우리는 연민, 이해, 연대의 마음을 품고 타인에게 다가갑니다.

p.145

나는 세상이 엉망진창으로 보일 때마다 ‘어느 누구도 철학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철학은 관념이나 추상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인간이 다른 인간과 ‘잘 어울려’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너무나 절실한 무엇이다.

이 책이 취향에 맞았다면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로 넘어가면 딱 적당할 것 같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우리는 온 삶을 바쳐서 배워야 한다.

루키우스 세네카

대학 때 배운 것들은 모두 저 멀리 날아간 줄 알았는데 읽다보니 그래도 아슴하니 처음 듣는 이야기는 아닌 게 많아서 등록금 날린 건 아니구나 안심했다.😎(어차피 4학년 때는 거의 동양철학 수업만 들었지만)

by

/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