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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어느 홍어장수가 흑산도 인근으로 홍어를 구하러 나섰다가 풍랑을 만나 흘러흘러 류큐(오키나와)국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8개월을 보내고 당시의 관례대로 중국을 통해 다시 조선으로 돌아가기 위해 배에 올랐으나 그 배는 또다시 풍랑을 만났고 그만 흘러흘러 필리핀의 어느 섬에 도달하고 마는데…머리 위에 불행의 별이 반짝반짝💫

그곳에서 중국으로 향하는 배를 물색하며 기약없이 보내다가 마침내 필리핀인의 상선을 타고 1803년 9월 광둥성 마카오에 다다르고 중국을 거쳐 조선으로 돌아오며 3년 여의 표류 여정이 끝이 났다.

그런데 하필 이 홍어장수가 언어에 대한 감각이 비상하게 좋아서 8개월 머무른 류큐국의 언어와 그 뒤 몇년을 머무른 필리핀 언어를 익혔고 성격이 그야말로 인싸 중의 핵인싸라 류큐국에서는 격리된 와중에도 가족과 가까운 사람만 모여 치르는 그들의 장례식에도 불려갈 정도로 동네 사람들과 친해졌고, 필리핀에서는 목공과 노끈을 만들며 벌어먹고 살기까지 했는데 그러고 고향에 돌아와 장사를 위해 들른 섬(흑산도)에 마침 실학자 정약전이 유배 중이어서 이 사람이 보고 겪은 것들은 대필하여 책으로 남기게 될 확률이 대체 얼마나 될까?

문순득이라는 사람이 겪었고 정약전이 받아 적은 ‘표해시말’이라는 책은 그야말로 세상의 우연이 모두 모여 일어난 하나의 결실 같다.

문순득이 표류를 시작한 1801년, 제주에도 필리핀인들이 표류해 흘러들어왔으나 당시 조선은 필리핀이라는 나라를 알지도 못해서 아무도 이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짐작도 못했고, 하멜이 그토록 ‘낭가사께이’나가사키를 부르짖었듯 이들은 ‘막가외’마카오를 외쳤지만 문순득의 표류기가 입에서 입으로 퍼진 9년 후에야 문순득이 직접 제주도에 가서 말을 나눠본 후 그들이 필리핀인임을 확인하고 중국을 통해 필리핀으로 돌려보내게 된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필리핀 통역관이었고 헌종은 문순득의 공을 치하하여 가선대부 종2품 공명첩을 하사했다고.
그리하여 마무리는 멋진 인생역전.

한편 「표해시말」을 일본어로 옮긴 히로시마대 다와타 교수는 문순득을 이렇게 평가한다.

“굉장히 재미있다고 할까요, 매력적인 사람이죠. 글도 모르는 사람이 표류해서 본 여러 가지를 기억해서 기록으로 남겼으니, 그만큼 기억력이나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글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3년간이나 표류하면서 그 많은 것을 기억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대개 글을 모르는 사람이 오히려 기억력이 좋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메모만 해두면 안심하고 잊어버리지만 그럴 수 없으니 기억력이 발달하는 거죠. 하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주민들과 격리된 표류민 신분으로 류큐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그렇게 깊이 들어갈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가 이야기한 류큐 사람들의 생활이나 의복, 음식에 대한 기록들은 민속학적으로도 의미가 큽니다.”

p153

읽으면 읽을수록 이 문순득이라는 사람이 너무 매력 넘친다.
어느 양반 나리가 배로 이동하다가 이런 사고를 만났다면 이렇게 3년여만에 돌아올 확률이 얼마나 될까.
류큐에서도 필리핀에서도 머무는 기간 동안 눈치좋게 말을 배우고 몸을 움직여 먹고 살 궁리를 하고 그 와중에 사람들의 풍습, 주변의 건축, 그들의 배 모양 등등을 유심히 살필 여유와 머리를 가진 그는 아마 굉장히 호기심 많고 생활력이 강하며 붙임성 좋은 사람이지 않았을까.

정약전은 하늘 아래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은 처음이라고 그에게 ‘천초'(天初)라는 별호를 지어줬다는데 조선 천지에 누구도 존재하는지 모르는 곳과 사람들을 보고 겪었던 그의 남은 생은 표류를 겪기 전과 어떻게 달라졌을지 좀 궁금하다.

표해시말에 대한 이야기는 꽤 오래전에 봤지만 얼마전에 자산어보를 보다가 문순득이 나오는 장면이 있길래 원래는 ‘표해시말’ 원서를 찾다가 안 보여서 적당히 다른 걸 골랐는데 나중에 더 검색해보니 ‘표해시말’은 신안 문화원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pdf로 받을 수 있었다. 😀

이 혁신적 화폐 제도는 시행되었을까? 안타깝게도 시행되지 않았다. 결국 문순득이 3년 2개월에 걸쳐 목숨을 건 표류 끝에 얻어 온 새로운 지식과 정보는 실용화되지 못한 채 실학자 3명이 쓴 「표해시말」, 「운곡선설」, 「경세유표」 안에 갇혀버렸다. 귀 막고 눈 막은 채 자폐적 사상으로 자신을 가두고, 국운의 기울어짐을 외면한 조선 관료들 탓이었다.

p239

내가 산 이 책은 표해시말의 설명서로는 매우 흡족했고 즐겁게 읽었다. 다만 문순득이 제목처럼 조선을 깨우지는 못했던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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