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월요일 저녁 때 TV를 이리저리 돌려대고 있자니 화요일에 방영 15주년으로 ‘기묘한 이야기’ 특별편을 한다는 광고가 나오더군요. 예전에 한국에서 극장판을 꽤 재미있게 봤던지라 어제 챙겨서 봤지요. 둘다 이런 ‘환상특급’ 분위기의 드라마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에피소드는 모두 5개. 중간중간 지나간 콩트까지 합치면 모두 15개였다고 하네요. 방영 시간이 저녁 9시부터 12시까지 장장 세 시간이었습니다.

봄, 가을 쯤에 한번씩 이렇게 특집으로 한다는데 이번 특별편에는 전반적으로 확 눈에 띄게 재미있는 건 없었고 대부분 평범하게 감동을 주거나 어정쩡하게 호러가 되려다 만 것 같아서 그냥 그랬군요.
특히 ‘너는 펫’에 나왔던 마츠모토 준의 에피소드인 ‘이마키요 씨’는 집에 찾아온 행운신(?)인 이마키요 씨에게 절대로 ‘집에서 억지로 쫓아내려 하지 말고, 상처 입히지 말고, 이사간다는 이야기를 앞에서 하지 말 것이며, 그에게 사과하지 말라’라는 룰을 지켜야 한다는 설정은 재미있었는데 실제 주인공에서 별 행운도 없이 계속 증식하며 음침하게(배우가 정말 음침하게 분장을 했음..;) 맴돌다가 결국에는 주인공도 이마키요 씨가 되어버린다는 엔딩은 좀 허무하더군요.

다섯 개의 에피소드 중에서 재미있었던 건 전차남의 주인공으로 나왔던 이토 아츠시와 ‘죠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의 쿠미코 역을 맡았던 이케와키 치즈루가 주연을 맡은 에피소드인 ‘리플레이‘와 토모사카 리에와 오카다 요시노리 주연의 ‘빗속의 방문객(雨の訪問者)’

‘리플레이’는 결혼 직전 약혼녀가 살해당해 실의에 빠진 이토 아츠시가 그녀의 장례식 직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비디오 카메라의 액정 화면을 통해 자신의 곁에 있던 죽은 그녀의 영혼과 만날 수 있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언제나 함께 있을 거야’라는 그녀의 말과 함께 다시 시작된 영혼과의 행복한 사랑은 그의 지나친 의심 때문에 뒤로 갈수록 잦은 싸움으로 번지게 되고…
종국에 드러나는 진실은, 그런 그의 성격을 못 견딘 약혼녀가 파혼을 선언하던 날 그가 그녀를 목졸라 죽였었다는 사실이었지요.
그리고 그 카메라 액정을 통해 튀어나온 그녀의 손은 다시 그의 목을 졸라버립니다.

반전 자체는 그럭저럭 짐작이 갔는데 중반까지는 얌전하고 청순한 약혼녀의 이미지였다가 후반에 가면 ‘자신에 대한 건 뭐든지 잊어버리는, 그래서 자신의 죽였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약혼자에 대한 증오로 그에게 복수하는 이케와키 치즈루의 연기가 소름이 오싹 돋더군요.
마지막에 액정에서 손이 튀어나오는 장면은 ‘링’ 생각이 나서 좀 웃겼습니다만…-_-;


토모사카 리에와 오카다 요시노리 주연의 ‘빗속의 방문객(雨の訪問者)’은 일본 만화 쪽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내용이었는데 그 진행이 꽤 재미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오카다 요시노리라는 배우가 워낙 범죄자 인상으로 나와서 실감나더군요. -_-;

비가 오는 날이면 긴 머리의 여성을 노려 살해하는 살인마 때문에 흉흉한 비오는 어느 날, 주인공은 여동생의 생일을 챙겨주러 그녀의 집으로 향합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핸드폰으로 동생에게 문단속을 단단히 하라고 일러두고 그녀의 집에 도착해 벨을 누르니 왠 시커머죽죽한 남자가 불쑥 문을 열어주며 자신이 여동생의 애인이라고 하는 겁니다.
게다가 집안으로 들어가보니 여동생은 없고 애인의 말로는 ‘우유를 사러 나갔다’는데 뭔가 미묘하게 어색하고 수상한 분위기가 감돌지요. 마침 TV를 트니 뉴스에서는 온통 살인마 이야기로 난리인데 용의자의 몽타쥬가 아무리 봐도 이 남자와 너무나 비슷한 겁니다.
자신의 집인양 여자에게 접대를 하던 남자는 갑자기 ‘사과를 깎아주겠다며’ 불쑥 식칼을 꺼내들더니 한발 한발 다가오는데…
여자가 황급히 여동생 방의 문을 여니 그곳에는 여동생이 죽은 듯이 쓰러져 있습니다.
절체절명의 순간, 등 뒤로 들리는 뉴스에서는 ‘방금 또 한 명의 여성을 죽이고 도주하는 범인을 체포’했다는 보도가 들려옵니다.
알고보니 지나치게 걱정하는 언니를 놀라게 해줄 생각에 배우 지망생인 애인과 짜고 연극을 했던 것.
주인공은 크게 한숨 놓고, 모두 화기애애하게 인사를 나누던 중 전화벨이 울립니다. 여동생이 받은 그 전화 저편에서는 그녀의 언니가 체포된 살인마에게 당한 마지막 희생자였다고 이야기가 흘러나오지요.
그제서야 집으로 오는 길에 자신이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는 주인공.
여동생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와 함께 앞으로 지켜줄 수 없어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집니다.

동생의 애인과 주인공 간의 의심만 팽창된 긴장감이 흥미진진했고 어릴 적에 부모를 잃은 주인공이 동생에게 ‘중요한 이야기는 모두 해줘, 항상 내가 지켜줄게’라고 말했는데 결국 자신이 ‘자신의 죽음’이라는 중요한 이야기를 직접 동생에게 해주기 위해 찾아갔다는 설정 같은 게 마음이 찡했습니다.
동생이 그런 험한 장난을 쳐도 머리 한대 안 갈기는 언니도 매우 착하더군요. -_-;

8 responses

  1. 키딕키딕

    으~ 재미있으셨겠어요~
    저런 은근히 우화같은 스토리가 저 드라마의 매력아니겠어요.
    작정하고 무섭게 하자면 하겠지만, 그래도 귀염성이 있는…
    아아~ 재미있겠다~ ㅠ.ㅠ

    1. 리츠코

      곧 있으면 동영상이 또 돌아다니지 않을까? 혹시 구하게되면 보내주리? ^^

  2. 삭은이~

    머리 한대 안 갈기는… 강하네요.

    1. 리츠코

      나중에 혹시 동영상 같은 게 돌아다니면 한번 구해서 보셈. 정말 나중에 ‘짠, 놀랐지’ 하는데 무의식중에 머리 한대 안 쥐어박는 언니의 착한 모습에 감동하게 됨. -_-;

  3. 저도 극장판을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가끔 케이블TV에서 보는데(집에서는 방송하는 채널이 안 나오기 때문에 친척집이나 헬스장에서만;) 꽤 재밌더군요.

    1. 리츠코

      케이블에서 기묘한 이야기도 해주나보네요.
      저는 극장판 이후에 처음 본 건데 보고 나니 앞쪽 스페셜들도 하나씩 찾아볼까 싶어지더라구요.

  4. 미사

    (다른 내용은 다 젖혀두고) 아니, 그런 언니가 세상에 있단 말야?(버럭) -_-

    1. 리츠코

      ‘드라마니까’ 존재하는 걸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