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나는 소설을 읽어도 드라마나 영화를 봐도 앞쪽을 좀 본 후 제일 마지막으로 가서 결말을 본 다음 다시 돌아와 마저 보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웹상에 올라오는 스포일러에도 무감한 편.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결말을 알고나면 도대체 무슨 재미로 보느냐고들 하지만.

지금까지 단순히 ‘내 성격이 급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상담을 받으면서 알게 된 건 내 불안이 너무 높아서 미디어의 재미보다 결말을 보며 느끼는 ‘안심’을 우선 추구한다는 점이었다. 😑

상담 선생님이 불안을 조절하는 연습인 셈치고 뒤를 먼저 보지 말아보는 게 어떠냐고 해서 요즘 보는 드라마나 영화, 책들은 가능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중.
‘얼마든지 뒤를 먼저 안 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대부분의 영화나 드라마를 컴에서 보다보니 어느새 습관이 몸에 배어버렸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따라가는 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초조해서, 해보고 놀랐다.

아무튼 이 드라마는 마지막 화의 반전이 가장 클라이막스여서 이 새로운 연습 덕에 재미있게 본 작품.

막내가 구독권을 주면서 유튜브에 드라마 소개 영상에서 이 작품이 유명하다고 했다길래 궁금해서 보기 시작했는데 재미는 있었지만 1기 엔딩이 이럴 줄 알았으면클라이막스에서 끝나다니… 내 성격에 절대 먼저 손 안 댔을 작품이기도 했다.😑 (이건 이 연습의 폐해려나)

제목이 세브란스severance는 사전적 의미로는 ‘단절’.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이 제목만 보고 의학 드라마인 줄 알것 같다. 그래서 한글 제목 옆에 단절이라고 추가로 붙여둔 듯.(세브란스 병원은 기부자의 성인 세브란스를 딴 것이라고. 철자도 같다;;)

배우 벤 스틸러의 연출작으로 드라마 평점은 엄청나게 높은데 애플 티비 자체가 워낙 점유율이 낮다보니 인지도도 낮을 수밖에 없다.( “)

마크는 시술로 직장 생활과 사생활의 기억이 나뉜 사람들로 이루어진 부서의 팀장이다.
회사 밖에서 의문에 싸인 동료가 나타나면서 그들의 일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여정이 시작되는데…

뇌에 칩을 넣어 출근과 동시에 일상의 기억이 모두 사라진 채 오로지 일만 하다가 퇴근과 동시에 일했던 시간의 기억은 모두 사라지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삶을 스스로 선택한 사람들.
일하는 동안에는 원래의 내가 어떤 사람이고 가족이 있는지, 기혼인지 미혼인지 아무것도 모르고 퇴근하고 나면 길에서 동료를 만나도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
어찌보면 스스로 자신의 인격을 둘로 나눠버린 셈.

주인공인 마크의 경우는 사고로 부인을 잃고 ‘부인을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이 필요해서 선택했는데 나머지 사람들은 왜 이 시술을 선택했는지, 그게 본인의 선택인지 강제였는지 아직 나오지 않았고 드라마 후반으로 갈수록 ‘일터에 있는 사람’들은 ‘일터 밖의 나’에 대해 알고싶어 하면서 이야기는 점점 복잡해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이 악용하기에 너무나 완벽한, 디스토피아의 끝판인 설정은 어떤 사람이 생각해낸 걸까 보는 내내 궁금할 정도.

패트리샤 아퀘트 정말 오랜만;; 백발이 성성해지셨네. -_-;

시즌 1은 총 9부작인데 3~5화쯤에서 좀 늘어지고 결말을 미리 알면 그 능선을 넘어도 별 재미가 없을 듯.

다음 시즌에서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갈지는 모르겠지만 딱 한두 시즌 추가해서 설정들 마무리하면 깔끔한 명작이 될 테고 시리즈가 길어지면 옛날옛적 ‘로스트’ 짝 나기 쉬울 것 같다.

배우들 연기도 좋았고 세트 분위기나 음악, 연출 등에 상당히 공들인 티가 많이 났는데 올해 에미상에서 14개 부분에 노미네이트 되었다고.

이 오프닝의 독특한 느낌이 드라마 전체 분위기를 잘 그려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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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sponses

  1. 장미의신부

    미래사회 배경이 아닌건가요…모니터가 왜 저런…

    1. Ritz

      시간적 배경은 별로 미래가 아닌 것 같더라고요. 저 사람들이 일에 쓰는 컴퓨터는 오히려 90년대 애플 느낌? 하는 일도 별로 SF 같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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