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를 거의 본 게 없는데 아이를 키우면서 끊임없이 한번씩 생각나는 작품이 하나 있다.
뜬금없지만 고 최진실이 주연이었던 장밋빛 인생.
어느 날 거실에 틀어져 있던 티비에서 주인공이 시한부 판정을 받은 후 어릴 때 자신과 동생을 버리고 도망간 엄마를 찾아서 만나
고 말하는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됐는데, 미디어에서는 보통 ‘자식을 낳고 나니 비로소 부모를 이해하게 되는’ 아름다운 순간에 대해 많이들 이야기하지만 나는 아이가 좀 크고 나니 가장 힘든 순간이 내가 부모가 되었는데 과거의 나의 부모가 했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때였고, 그럴 때마다 저 장면이 생각난다.
아이가 받아온 받아쓰기 70점이 집에 오는 게 무서울 정도로 매를 때릴 만큼 화가 나는 일이 아니었고, 아이가 저지른 실수가 다음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가르쳐줘야 할 일이지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타박할 일이 아니었다는 걸 몸소 느끼며 처음에는 당황스러웠고 그 다음으로는 슬펐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자꾸 아이에게 내가 겪었던 것과 다른 방식으로 육아를 하며 위안을 얻으려고 한다.
여기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다보면 가끔 그 길이 ‘옳고 그른’지 잊고 그저 ‘그렇게 하지 않는 나’에게 만족하는 이상한 방향으로 갈 때가 있는데 며칠 전 이 글을 보고 뜨끔했다.
“상처에 대한 집착과 과도한 보상. 내가 보기에는 이 역시 요즘 시대에 유행하는 신경증이다. 극단적인 경우, 지나친 경우를 비판하기 위해 사용하는 칼을 평범한 상황에까지 들이대서 만들어 낸 신경증이다.”
이 글을 읽으며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 넣는다.
육아는 한 인간이 자라서 사회에 나가 한 사람의 몫을 잘 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과정. 나의 유년을 위로받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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