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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무늬영원

이미 여러 번 큰 상을 받으면서 한강 작가의 웨이브는 몇 번이나 지나갔지만 얼핏 작품에 대한 소개나 감상글을 보면 내가 이 작가 작품의 감정을 받아내기에 요즘 그리 건강한 상태가 아니라 엄두가 안 났는데 그럼에도 노벨상 작가의 작품을 원서로 읽을 수 있는 이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기는 아까워(…) 타임라인에 추천을 부탁하니 와이낫님이 비교적 괜찮을 것이라며 이 책을 골라주셨다.

노벨상 발표 이후 한두 시간 지난 즈음이었는데 이미 유명작들은 다 털렸고(?) 다행히 이 책은 주변 도서관에 한 권 남아있길래 상호대차로 겟.

어느 작가에 대해 처음 대면하기에 적당히 부담없는 단편집이었고 기념(?)으로 사둔 <소년이 온다>를 읽기 전에 마음의 준비, 워밍업으로도 적당했다.
국내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렇듯 번역서를 읽으며 어수선해진 머릿속 국어를 재활하는 기분도 들었고.(<고동색>이라는 단어를 본 게 얼마만인가 😅)
이틀 사이에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와 이 <노랑무늬영원>을 내리 읽었는데, 별스럽지 않은 문장이 차분하게 흘러가는데도 왜 이렇게 글 쓴 사람의 깊고 깊은 우울과 슬픔이 읽는 사람에게 바싹 들러붙는지. <소년이 온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잡아야 할 것 같다.

+식탁 위에 둔 한강 시집을 옆사람이 넘겨보길래 “나는… 노벨상을 받았어도 저 사람의 마음속을 생각하면 너무 힘들 것 같아서 저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더라”라고 감상을 말했더니 옆사람이 “진주 같은 건 조개의 상처에서 나온다고 하는데 <정말 빛나는 진주>를 만든 조개의 몸이 과연 멀쩡할까?” 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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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ponses

  1. Don’t Panic

    저는 ‘소년이 온다’가 작가 첫 작품이었는데 힘들었지만 너무 좋고 너무 반가웠습니다. 90년대 수많은 문학들이 직간접으로 광주를 다뤘지만 이제야 이런 작품이 나왔구나 싶었어요. 이런 소설이 직접 겪지 않은 세대의 여성에게서 나온 것도 너무 좋았고요 암튼 강추입니다

    1. Ritsko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추천하는 데에는 역시 이유가 있겠지요. 일단 제가 컨디션이 매우 좋은 날 시작해보겠습니다. (*•̀ᴗ•́*)و ̑̑

    2. Don’t Panic

      그리고 의외로 ‘희랍어사전’이 여운이 길었는데 지금도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그냥 이 작가는 별거아닌 듯한 한 문장만으로도 독자를 자기 세계로 쑥 끌어당기는 작가인 거 같고 그게 다른 작가 소설과 차별화되는 지점인 거 같았어요

    3. Don’t Panic

      폴란드에서 지내면서 썼다는 ‘흰’도 분향은 짧은데 여운이 길었어요. 저는 처음에 읽고 나서는 이게 소설이야 에세이야 싶어서 혼란스러웠어요

      1. Ritsko

        이 작가 작품을 많이 보셨네요. O.O

        1. Don’t Panic

          소년이 온다를 읽고 한강 작가는 당시 우리나라 문학의 최고출력물이자 한국문학의 미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 이후에 저 얘기 엄청 하고 다녔요ㅋㅋㅋ 소년이 온다가 출간되고 트이타에서 엄청 핫했서 저도 그렇게 읽게 됐는데 소년이 온다를 읽은 사람들 누구라고 다 그렇게 생각되었을 거에요

  2. 김땡중

    평생 못 읽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1. Ritsko

      모든 사람이 다 읽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3. Why Not?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작가분의 작품 중에서는 그나마 덜 자극적이고 볼만했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 깊은 우울함과 슬픔은 어찌할 수 없습니다만…제가 도저히 쓰지 못할 저렇게까지 절제된 문장들을 보면 필사를 여러 번 해서라도 흉내라도 내 보고 싶지만 제겐 무리라는 걸 더 잘 알게 되는지라 부럽기도 했구요.

    1. Ritsko

      적당한 책 추천 감사해요우.

      읽는 내내 이 글을 쓴 사람은 얼마나 깊은 슬픔을 가지고 있길래 이렇게 티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거지, 라는 생각을 여러번 했어요.

      1. Why Not?

        그런 의미에서 채식주의자, 몽고반점부터 한강이라는 작가를 처음으로 접한 모든 분께 삼가 애도를(…)

  4. virgula

    저는 그분의 모든 작품이 힘들었어요. 그나마 제일 잘 넘어간 게 그대의 차가운 손이었는데. 그것도 두 번 읽으니 갖고있기 힘들더라고요. 아름다운 작품이라 생각하면서도요. ㅠㅠ

    1. Ritsko

      엇, 저 그거 예약해 둔 거 도착했다는 알림 와서 내일 찾으러 가요. 아름다운 작품이었다고 하시니 그래도 내심 기대가 되네요. 🙂

  5. 진화

    소년이 온다 절반까지 읽고 누워서 눈물을 귀로 흘리다 잤어요 ㅠ

    1. Ritsko

      오우…. 저는 소년이 온다를 언제쯤에나 손에 잡게 될까요…

      1. 진화

        되게 차분하게 흘러가는 글임에도 상황들이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아우성치는 느낌이에요. 천천히…천천히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읽어보세요 ㅠ 저는 다른 작품들이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6. 한국어가 주는 그 느낌과 울림이 있죠. 번역서를 읽는 것과 천지 차이인.
    워밍업 정도의 단편집이라니, 저도 내용이 궁금해지는군요.

    1. Ritsko

      그러게요. 지금까지 수많은 노벨상 작품(…)들이 원서로는 그런 울림을 가지고 있었겠죠. ^^;;
      이 작가는 이런 분위기의 이야기를 쓰는구나, 하는 간을 볼 수 있는? 적당한 단편집이었어요. 이거 읽고 소년은 온다도 도전! 하는 기분이었는데 진화님 이야기에 다시 보류. 백스텝 백스텝.(읽고싶어질 때 읽으려고 대여가 아니라 아예 구매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