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제목만보고 내용이 궁금했는데 가격이 생각보다 좀 돼서 차일피일하다가 도서관에서야 실물로 보게 된 책.
판형이 엄청 큰데다가 두께도 상당해서 가격이 그렇게 셌던 거다..;

미술사에서 많은 화가들이 ‘자화상’을 그렸지만, 단순히 화가가 자신의 ‘얼굴’을 그렸다기보다는 그 그림 안에 참으로 많은 생각과 고뇌와 의미가 담겨있다는 이야기.

생각해보면 계속 거울을 보며 자신의 얼굴을 화폭에 담아나갈 때 화가는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게 될까. 남 앞에 그려내놓는 내 모습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그저 요즘의 셀카처럼 가장 예쁘게 나오는 각도에서 곱게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내 안의 모든 것이 드러나도록 그린다는 건 생각보다 껄끄러운 작업일지도 모른다.

인간에게 ‘자아’ 혹은 ‘나’에 대한 개념이 확립되기 이전에 그려진 ‘자화상’과  그 이후에 그려진 화가가 의도하는 ‘자화상’, 그 그림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들을 과거에서 현대 순으로 차분하게 마치 잘 정리해 놓아서 ‘자화상’이라는 소재의 재미있는 미술 교양수업을 듣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었다.(바꿔 말하면 보통의 미술서들보다는 좀 무겁다…;)
다 읽고나니 오히려 철학적인 관점에서 생각이 많아지는 책.

책 속에는 정말 수많은 자화상들(현대 화가로 넘어오면 사진에 이르기까지)이 실려있는데 이상하게 책을 다 보고 나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이 아르테미시아의 자화상이었더랬다.

Self-portrait by Artemisia Gentileschi

머리는 헝클어져있고 팔은 탄탄하다. 무엇을 그리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거침없이 그려나간다는 느낌이 그대로 전해진다.
유럽 문화사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화가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평탄하지 않은 인생으로도 유명하고 그래서 저 그림에서는 화가가 자신의 모습을 그리면서 의도했을지도 모를  ‘나는 그런 내 인생에서 오로지 그림만으로 승부하고 말겠다’는 패기가 전해져서 잊혀지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Self-portrait with two pupils by Adélaïde Labille-Guiard
Self-portrait with two pupils by Adélaïde Labille-Guiard

어쩌면 저 그림 바로 직후에 이 그림을 봐서일지도…
자신의 모습을 그야말로 프랑스 인형처럼 예쁘고 곱게 그려놓은 이 그림은 윗 그림의 완전히 반대편에 있는 듯하며 누군가의 필터를 곱게 먹인 셀카를 보는 기분이었다. ^^;

더불어 소포니스바 안귀솔라 등 잘 몰랐던 여성 화가들을 접할 수 있었던 것도 작은 수확. 나중에 기회되면 소장해두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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