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유홍준 책을 보다가 알게 됐는데 마침 도서관에 책이 있길래 빌려보고 묘하게 깊은 감명이 남아 결국 소장까지 한 책.

변월룡(펜 바를렌 Пен Варлен 1916~1990)은 우리에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알고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꽤 좋아하는 ‘연해주의 유랑촌, 힘든 환경에서 험난한 시절을 자신의 힘으로 헤쳐나가며 화려한 스펙을 이뤄낸 사람’으로, 러시아 레핀 미술대학 교수이자 한국인 미술학 박사 1호.
이 사람이 살아간 시간에는 유학 중이던 본인 빼고 온 가족이 난데없이 카자흐로 강제이주를 당한다든지(고려인 강제이주), 대학 생활 중에 난데없이 독소 전쟁으로 전쟁터 한복판에서 살아 남아야 한다든지 어지간한 영화 주인공을 무색하게 하는 굴곡이 난무했는데, 그럼에도 해방 후 북한에서 교수로 초빙받자 조국으로 간다고 마냥 행복하게 그곳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면 소련에서 파견을 했으니 가긴 가야겠지만 저렇게 기뻐하며 갈 일이 뭐가 있었을까 싶다.

일생에서 한글이나 한국의 교육을 받은 게 불과 몇 년밖에 안 되는데 당시 어지간한 북한의 교수들보다 한자도 한국어도 능통했던데다가 사회성도 좋아서 주변에 사람이 끊이지를 않았다고 하니 소위 먼치킨 같은 사람이었던 모양.
이 책을 읽다보면 이 사람이 북한에 교수로 있는 동안 주변의 화가나 교수들이 친하게 지내고싶어 안달하는 모습이나 소련에 돌아간 후에도 마치 아이돌 오빠에게 팬레터 보내듯 애틋하게 쓴 편지들을 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였다.(…) 지난번 읽은 근원 수필의 근원 김용준도 수필에서는 그렇게 꼬장꼬장하고 니힐하더니 이 사람 앞에서는 무슨 짝사랑하는 동네 오빠 바라보듯 했더란.

변월룡이 유명했던 분야 중 하나가 인물화였다는데, 그림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책에 실린 이 사람이 그린 인물화들을 한장 한장 보고 있으면 단순히 외형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를 그린 느낌이 들어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지 잠시 유심히 보게 된다. 2년 전 전시회를 몰랐던 게 두고두고 아쉬운 마음.

일제시대에 가장 뜨겁게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 중 하나였으나 월북했다는 이유로 우리 역사에서 지워졌던 약산 김원봉처럼 연해주에서 태어나 지역적으로 당연하게 소련과 북한에서 활동했다는 이유만으로 알려지지 않은 이 화가의 이야기는 왠지 알퐁스 무하의 전기를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도대체 국가가 이 사람들에게 해준 것도 없는데 이들은 왜 이렇게 맹목적으로 하염없이 마음이 향했던 것일까.
지금의 우리는 그 시절보다 확실히 그런 열정도 애정도 좀 줄어든 것 같은데 그 사이에 무엇이 변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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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sponses

  1. 우아 그림 너무 좋네요. 소개 감사합니다:)

    1. Ritz

      2016년에 우리나라에서 전시회를 했었다는데 이제야 알게 돼서 너무 아쉬워요. -_- 그 전시회 끝나고 국립현대미술관에 몇작품 기증하고 갔다는데 그거라도 보러 가야하나 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