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글을 쓰려고 앞쪽을 찾아보니 이 작가의 전작은 읽고도 따로 기록을 남겨둔 게 없네요. 

예전에 서점에서 우연히 이 작가의 ‘무서운 그림’ 시리즈를 두 권쯤 사서 꽤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림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실력’은 꽤 좋았으나 두권째쯤 되니 글이 약간 틀 안에서 반복되는 느낌이라 세권째는 손을 안 댔더랬어요.
그리고 며칠전에 다른 책을 주문하다가 갑자기 미술 관련 서적이 땡겨서 미술 카테고리 안의 순위권을 훑는데 이 책이 눈에 띄어서 이게 예전에 봤던 그 ‘무서운 그림’ 시리즈인건지 내가 봤던 책인지 좀 헷갈리다가 일단 주문해봤습니다만, 다행히 봤던 책은 아니었네요..;;

전에 읽은 ‘무서운 그림’ 시리즈의 압축판(?) 같은 느낌인데 전작은 단순히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나열했다면 이 책은 운명, 저주, 증오, 광기, 상실, 분노, 죽음, 구원이라는 카테고리로 나눈 다음 그에 해당하는 그림들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이전보다 구성이 체계적이라 그런지 좀더 조리있고 풍성하네요.

전작에 나왔던 그림이 한두작품 정도 겹치기는 합니다만 그보다는 평소에 쉽게 접하지 못했던 작품들도 꽤 있고 눈에 익은 작품이라도 그 이면의 이야기들이 재미있어요. 

이 두 그림을 나란히 두고 보면 왼쪽은 정말 ‘무서운’ 그림이고 오른쪽은 한없이 아름다운, 정말 ‘왕비님’의 그림이지만 그 이면의 이야기는 결국 어떤 의미로든 무섭거든요.

왼쪽 그림은 러시아의 ‘황녀 소피야’를 그린 것으로 배다른 남동생 표트르 대제와의 정쟁에서 패배해서 수도원에 유폐된 데다가 창밖에는 그녀의 편이었던 총병대장의 시체가 걸려있기까지 합니다. 보통이라면 앞으로 자신의 목숨이 어찌될 지 알수 없으니 조금은 두려워하는 기색이 있어야할 것 같은데 표정에서는 그저 분노만이 보이니 이 그림에서 말하는 ‘공포’는 바로 그 분노일 거에요. 

오른쪽 그림의 오스트리아의 황비 엘리자베트는 마치 동화속의 인물 마냥 화사하고 아름답습니다만 이 아름다움 때문에 인생이 엉뚱한 방향으로 꼬였고, 그녀는 이 완벽한 자신의 스타일(키 173에 몸무게 46~49kg)을 유지하기 위해 격렬한 스포츠와 영양실조에 걸릴만큼의 다이어트로 평생을 보냈다고 합니다. 자신있었던 긴 머리칼을 하루에 세시간씩 빗질을 했다고 하니 미모를 유지하는 것도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닌 거죠. -_-; 어떤 면에서는 이것도 정말 공포예요…; 기껏 좋은 자리에 올라서 맛난 것도 즐거움도 제대로 못 누리다니 그런 아까울 데가…( ”)

그냥 예쁜 그림을 보는 걸 좋아하지만 그 배경이나 그림이 그려진 사연을 알고 나면 좀더 그림에 대해 많은 게 보이기 마련이라 이런 류의 책들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장르 특성상 글을 쓰는 사람의 이야기 솜씨가 좋을수록 책이 술술 넘어가고 재미도 있기 마련인데 그런 면에서 이 작가는 꽤 괜찮은 편입니다.
그림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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