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바람을 보았습니까
나도 당신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나뭇잎이 흔들릴 때
바람이 지나가는 중입니다.
바람이여,
날개를 흔들고 당신에게 불기를
말도 많고 시끄러운데, 국내에서 흥행 성적은 그리 좋지 않은 듯한(그러면 그 수많은 까는 사람들은 보지도 않고 까고 있다는 건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은퇴작(이번에는 과연 은퇴작이 될 수 있을까?) ‘바람이 분다’를 보고 왔습니다.
내용의 문제를 떠나서 최근 지브리 작품 중에 그렇게 재미있게 본 게 별로 없어서 극장에서 열심히 챙겨보지 않은지 좀 됐는데 감독의 마지막 작품이라고도 하고, 시끄러운 작품이면 역시 보고 왜 시끄러운지 알아야하지 않을까 싶었던 거 같아요.(까도 보고 까야…?;)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제로센이나 그것을 개발했다는 호리코시 지로, 그 시대적 배경이 거슬리기보다 내용면에서 미야자키 감독의 마지막 작품이라기에 여러모로 아쉬운 작품이었습니다.
감독은 평생 동경했던 ‘하늘을 나는 것’에 대해 ‘하늘을 나는 것을 만든 사람’의 입을 빌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미국 사람이 아니라 일본 사람이니 라이트 형제가 아니라(-_-) (감독 말대로라면 ‘의도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전투기를 만든’) 호리코시 지로였겠죠. 굳이 호리코시 지로라는 실존 인물에 ‘바람불다’라는 소설의 이야기를 입히고 이 이야기는 ‘절대 픽션이다’라고 강조할 필요 없이 차라리 지금까지처럼 아예 창착으로 만들어진 세계의 인물이면 안됐던 걸까요. 그 점에서 태생적으로 이 영화는 이후로도 계속 논쟁을 피할 수는 없을 거에요.
무엇보다 나우시카부터 시작해서 시타, 그리고 소피까지 이어지는 능동적이고 씩씩했던 여주인공의 성향을 가장 마지막 작품에서 버려버리고 그야말로 그림으로 그린 듯한 ‘순애보’ 여주인공으로 마지막 작품을 마무리한 점이 가장 아쉽습니다. 하다못해 사랑하는 사람 곁에서 숨을 거두는 것도 아니고 주인공이 가장 힘든 순간에 자신의 생명을 태워 곁에 있어주다가 마지막에는 마치 ‘개는 주인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죽어간다’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사라져버리는 여주인공이라니, ‘결국 영감이 원한 건 이런 여자였소’ 라는 생각만 머리를 때렸어요.
저는 하야오의 마지막 작품은 지금까지 그랬듯 실제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지만 어딘가 존재할 것만 같은 세계에서, 그 안에서 마음껏 날아 오르길 원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속의 여주인공은 나우시카나 키키, 시타 같은 여자였으면 했지 적어도 나호코 같은 여자는 아니었어요.
사상 때문에 보기 껄끄럽다, 밀리터리 상식이 풍부해서 극중의 제로센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부 구라라 도저히 못 참을 것 같다 하는 분이라면 비추천, 지브리 작품을 좋아했고 미야자키 감독의 ‘하늘을 나는’ 이야기를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마지막으로 그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작품으로서의 ‘바람이 분다’는 지브리의, 하야오의 작품답지 않아 아쉽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노감독이 하는 이야기는 어딘가 짠해서 한동안 기억에 남았습니다.
- 극중에서 카프로니 백작의 ‘예술가, 설계자가 한창인 기간은 10년이다’라는 건 어쩌면 몇번의 은퇴를 번복하면서 돌아올수 밖에 없었던 감독이 하고 싶었던 하소연 아닐까 싶네요. 그 10년이 지나고도 계속 소모되다가 이제서야(…) 은퇴할 수 있었던 자신에게 하는 말일지도요.
- 여전히 군중신은 참으로 잘 그려요. 다 보고도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는 대지진 장면이었네요;
- 보다가 제일 혈압 올랐던 건…
손잡은 채로 핀 그 담배 한대… 꼭 피워야했니?(좋았던 남자주인공에 대한 인상이 그 한컷으로 만정이 다 떨어졌음.) - (예고편에 속지말자. 이 이야기는 지로가 여주인공과 연애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비행기랑 연애하는 이야기다. -_-)초반 나레이션이 주인공 목소리이자 안노 감독의 연기.(극 내내 저 수준…)
안노 감독 한번만 더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라며 성우 하면 용서하지 않겠다.
15 responses
어쩌면 복귀 안 하기 위한 강수를 둔 걸지도요..(복귀를 두번 다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일이 없도록 말이지요)
아… 왠지 이 설을 차라리 믿고 싶어지네요. ㅠ.ㅠ
@tw_Ritz 좋은 감상글이네요.
@tw_Ritz 첫 목소리가 나올 때 깜짝 놀랐어요. 뭔가 이질적인… 나중에 타이틀롤 보면서 아 맞다 싶었습니다. 정말 당황스런 느낌이었어요
얼굴과 목소리가 따로 놀고 있어요…-_-;
근데 바람이 분다를 보고 나서 정말로 궁금한 건… 진짜로 정말로 하야오 감독은 안노 감독 연기에 ‘만족’ 했던 걸까? ㅠ.ㅠ
@tw_Ritz 쿨럭…..보..볼만한 가치는있나요..디뷔디사기는싫구요 ㅎㅎㅎ
그 가치라는 건 워낙 주관적인 거라 제가 뭐라고 딱 못 정하겠는데요. ^^; 글에서 말했듯이 그런 순애보를 안 좋아해서 저도 디비디를 사고싶지는 않아요. ^^;
@tw_Ritz 글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
@tw_Ritz 극장마다 예매율은 제법 되는걸로 보아 보고와서 까는듯. 아닌게 아니라 제대로 깔려면 보고서 까야.. 라는 것도 있고, 워낙에 욕먹고 있으니 궁금해서 혹은 확인하려고 보러가기도 하는듯.
음? 예매율이 그렇게 높았어요? 어디선가 본 글에는 평균 내니 한회에 50명 정도 본 거 같다더라구요. 주말 누적관객수는 7만이네요;; 오늘 볼 때도 관객 열명도 안됐던 듯…
릿짱 본 시간대는 낮이라 그러지 않았을까요? 낮에 메박 씨지뷔 롯데 네이버 영화예매 순위에선 다 5위안에 들고 있던데? 이러니저러니해도 역시 미야자킨가 싶더란..
항상 비슷한 시간대에 보는데 에바가 차라리 사람이 더 많았던듯; 이번 주말까지 갈수 있을까? 하는 글도 좀 보이고. 저 글에서 ‘까는’이라고 했던건 ‘이러저러하다는데 그래서 안 볼건데’ 하고 쓴글이 워낙 많아서 한 이야기였어요.^^
@tw_Ritz 으흠 오늘오전에 조조로 보려고 예매 다해놨는데 가게한시간미루려고;;;급로스팅주문이들어와서….기약이없네요 흑.수요일에끝난다는 소문이 엉엉엉
흥행 대차게 말아먹어서 이번 주말까지 못 버틸 것 같다고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