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동생이나 나나 일본 소설을 많이 읽는 편이지만 굳이 비유를 하자면, 내가 주로 보는 일본 소설은 히가시노 게이고 계열, 동생이 주로 보는 건 에쿠니 가오리 계열.

서로 취향이 겹치지 않아 가끔 좀 ‘다른’ 분위기 작품을 읽고싶을 때 친정집 책장을 뒤지곤 한다. 오늘 눈에 들어온 건 배고플 때 보면 괴로울 것 같은 제목의 ‘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

네명의 여류작가들이 모여 한 편씩 쓴 단편집인데 네 편 모두 배경은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칼의 시골마을이었다. 일본인이 쓴 유럽의 시골 마을에 대한, 시골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깊이있지는 않지만 잔잔하니,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유럽의 어느 시골마을’에 대한 환상과 일본인 특유의 정서를 적당히 섞어 그려내고 있다.

전체적으로 담담히 이야기하듯 흘러가서 한번 읽기 시작하니 왠지 한참 이야기 중인 상대방의 말을 도중에 끊기가 어렵듯이 어느 호흡에서 잠시 쉬어야할 지 알수 없어서 결국 두어시간만에 다 읽어버렸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에피소드는 모리 에토의 블레 누아. 

어머니는 진지한 얼굴로 끄덕였다. 
“이렇게 된 바에 죽고 난 뒤에나 기대하는 수밖에.”
“죽고 난  뒤?”
“죽은 사람은 딱 한 번 모습을 바꿔서 이 세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더라.  내가 너를 인정할 때, 혹시 그럴 날이 온다면, 내가 꽃으로 변해서 너에게 그걸 알려주마.”
“꽃…”
“꽃잎이 다섯 개 달린 하얀 꽃이다.”
마지막에는 장난기가 섞인 표정으로 웃었다.

 (이 얼마나 동양스러운 정서인가. -_- 내가 죽고나면 나중에 한번은 돌아오마 라니….)
나는 은근 일찍 남편을 잃은 어머니와 그 아래에서 자란 외아들간의 반목과 오해, 나중에 알고보니 어머니가 이러이러했더라, 라는 사실을 알고 사무치는 후회 같은, 감동계 테마를 좋아하나보다. -_-;;

이 네편의 이야기가 한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주제는 결국 마지막의 에쿠니 가오리의 에피소드인 알렌테주에 나오는 이 문단에서처럼

내 생각에 같은 음식을 같이 먹는다는 것은 의미 있는 행위다.
아무리 섹스하는 사이라도 별개의 인격이라는 사실을 바꾸지 못하는 두 사람이,
매일 똑같은 음식을 똑같이 몸속으로 집어넣는다는 행위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앉아 먹는, 우리나라로 치자면 밥상머리의 소중함에 대한 것. 
그러고보니 이마 이치코의 어른의 문제에서도 일이 복잡하게 꼬인다 싶으면 에비 고로가 상다리 부러지게 한 상 차려내곤 했었지..( ”) 

ps. 이런 잔잔한 이야기도 좋지만 단편집이라면 역시 오헨리나 모파상처럼 마지막에 딱  하고 한방을 치는 반전(빌린 목걸이 잃어버려서 평생 벌어다 돌려줬더니 알고보니 가짜 보석이었더라 같은)이 있는 이야기가 재미있어요. 갑자기 오헨리나 모파상 단편집이 그립네요. 그거나 새로 사서 읽어볼까…

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6점
에쿠니 가오리.가쿠타 미츠요.이노우에 아레노.모리 에토 지음, 임희선 옮김/시드페이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