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1.

지지난주에 피부과에 약을 받으러 가서 예의 그 낙천적인 의사 선생님에게 ‘이틀 이상 약 먹는 기간이 길어지면 여전히 밤 늦은 시간부터 알러지가 올라오더라’고 설명했더니 매우 산뜻한 말투로

아무래도 장기전에 들어간 것 같네요. 약은 아예 한달치 드릴게요~

라고 했다.(항상 어찌나 별일 아닌 양 말씀하시는지…)

뭔가 장기 복용하는 약이 생기니 순간 심란하면서도 ‘그래도 매일 먹는 게 아니니 어디야’ 하고 병원을 나왔는데 문득, 그 와중에 그래도 매일 먹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내가 너무 웃겼다. 어떤 상황에서든 기를 쓰고 ‘그래도 그거보다는 낫지’ 라고 찾는 건 우리 엄마를 닮은 것 같은데(그래서 엄마랑 나랑 이야기하다보면 나쁜 일은 우리에게 그다지 일어나지 않음….) 사실 자기합리화에 가깝지만 잘만 쓰면(?) 안 좋은 상황에서 멘탈 유지할 때 꽤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2.

지난 주말에는 지유네와 TV 틀어놓고 저녁 먹으며 눈썹도 그리면서(…) 노닥노닥 즐거웠고, 어쩌다보니 이번 주에도 집에서 사람들이랑 모일 일이 있는데 주변에 알 사람은 다 알겠지만 내가 워낙 지인들과 집에서 노는 거 좋아한다.(…) 그래서 그걸 싫어하지 않는 배우자를 만난 걸 새삼 감사하며 살고 있기도 하고.
이유야 정말 별거 없고 바깥에서 식사하고 차 마시러 이동하는 것보다 집에서 해결하는 게 ‘내가 편해서’ 인데-나도 주변 사람들도 아이가 생기면서 한층 더 밖에서 헤매는 시간이 피곤함. 린양 친구 엄마들을 만날 때도 동네 카페 같은 데서 만나면 워낙 좁다보니 아는 사람들을 만나거나 혹은 근처에 누군가가 우리 이야기를 지나다 들었다든지 혹은 ‘누구 엄마랑 누구 엄마가 만나고 있던데’ 하는 이야기가 한바퀴 돌아 들어와서 별 이야기 안했고 별 목적 없이 만난 건데도 피곤함- 나는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런 줄 알았더니 린양 학교 보내보니 이건 정말 내가 드문 경우였다…;
막내 태어나기 전까지 집에  아빠 친구분들 가족으로 손님이 끊이는 날이 별로 없었던  걸 생각해보면 이건 백프로 아빠를 닮은 것일 듯.

그렇다고  우리 삼남매가 성향이 똑같지 않은 걸 보면 자라면서 부모를 닮는 것도 무의식중에 내가 닮고 싶은 것만(?)  골라 닮는 게 아닐까 싶다.

부모 입장에서야 가능하면 안 좋은 점은 닮지 말았으면 하는데 린양은 자라면서 나한테, 혹은 옆사람에게서 뭘 닮아가게 될까.(애들이 꼭 닮지 말란 것만 닮더라)
현재 스코어는 ‘친구랑 싸울 때 엄청나게 정없는 말투로 말하는 것’은 나한테서 간 것 같은데 이왕이면 1번의 저런 거라도 좀 닮아주면 좋겠고로. -_-
가끔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싶은 일을 혼자 알아서 해결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건 옆사람을 닮은 듯.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한 게, 지금 읽고 있는 책에 ‘아이는 결국 부모를 보고 닮으며 자라니까 어떤 사람이 되라고 말만 할 게 아니라 부모도 아이가 되었으면 하는 방향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뉘앙스의 글이 있어서.
애 키워보니 그런다고 좋은 것만 보고 닮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그게 될 것 같으면 세상이 이 지경이겠어. -_-

by

/

7 respons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