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건

이 트윗에서였는데 근래에 본 육아 관련 글 중에 가장 공감이 가서(아마도 나도 저 글을 쓴 사람처럼 ‘좋은 엄마는 고사하고 불량 엄마를 면하고 싶은’ 사람이라 그럴지도) 저 책도 덩달아 궁금해졌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한 가해자의 엄마의 이야기. 지금까지도 최악의 학교 내 총기난사 사건 중 하나인 99년 콜럼바인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 중 한 명의 엄마가 쓴 글이다.
콜럼바인 사건은 17살의 두 가해자가 교내에서 총기를 난사해서 학생과 교사를 합쳐 13명을 살해하고 24명의 부상자를 냈으며 총 뿐만 아니라 곳곳에 미처 터지지는 못한 폭탄까지 뿌려뒀던, 어떻게 그렇게까지 했을까 싶은 최악의 사건.

이 정도의 범죄라면 우리는 보통 애들의 가정환경이 혹독했거나 부모의 가정교육이 최악이었을 거라고 짐작하게 되는데 이 부모는 오히려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는 데에 관심이 많고 경제적으로 크게 힘들지도 않은,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 정도의 흠이나 문제는 우리들의 가정에서도 있을 수 있는 너무나 평범한 집안이었고, 그래서 이 책을 읽다보면 지금의 나의 육아가 뿌리부터 불안해지며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이 서서히 마음을 조여온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나쁜 아이는 보통 부모의 가정교육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건 내가 아이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한 아이가 문제가 일으키지 않을 거라는 일종의 ‘보장’ 인데 그 방향이 조금만 틀려도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건 어지간한 공포영화보다 무서운 일이다.

딜런을 괴물로 그려 콜럼바인의 비극이 보통 사람이나 가족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라는 인상을 준다면, 거기에서 얻을 수 있는 안도감은 거짓일 것이다. 나는 진실을 이야기함으로써 그런 식으로 달랠 수 없는, 더욱 무시무시하지만 중요한, 취약함에 대한 인식을 일깨우고자 한다.

p.118

책은 당연하지만 그 사건이 벌어지는 날로 시작되며 사건이 수습되고 세상의 모든 비난을 온 몸으로 받으면서 이 엄마는 도대체 내가 내 아이의 어떤 모습을 놓쳤길래 이렇게 된 것인지 끊임없이 되새기고 되새긴다.
한 사건에 대해 그 아이를 키우는 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돌이켜 생각하는 방식이라 읽는 사람에 따라 책이 좀 지루할 수 있는데 읽다보면 이 엄마의 의식의 흐름이 변하는 것이 포인트.

  • 처음에는 ‘내가 만든 가정은 너무 잘 흘러가고 큰 문제가 없었고(이 엄마의 묘사를 보다보면 이 집은 마치 훈훈한 미국 홈 드라마에나 나올 것처럼 보인다.) 아이도 키우면서 수월했던, 다만 사춘기 들어서고 문제를 좀 일으키는 정도의 그 또래 아들’이었다고 강조하지만
  • 사건이 수습된 후 수사기관에서 모아서 가족에게 돌려준 자료-전혀 몰랐던 아들의 극심하게 우울한 일기와 공범자와 함께 찍은 입에 담지도 못할 인종차별적 욕설과 막말들이 담겨있는 비디오 등-에서 무너져 내린다.

책 후반으로 가면 사실 이 엄마가 ‘문제 없다’고 생각하며 지나쳤던 수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오고 본인도 쓰면서 다시금 그 순간들을 놓친 통한이 한층 깊어진다. 우리는 사건이 벌어진 후에 이 책을 읽으니 ‘어떻게 저런 걸 부모가 놓칠 수가 있나’ 쉽게 말할 수도 있지만 내 아이가 사춘기라면 그저 유난하게 지나간다고 생각할 법도 한 일들일 수 있고 실제로 이 집 주변에서조차 당시에는 ‘사춘기 남자애들이 꼴통 부릴 때는 못말리잖아’ 하며 위로한다.

아이는 자랄수록 부모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숨기는 데에 능숙해진다. 이 책에서 말하듯 ‘아이가 아무리 절망적 상태에 빠져 있더라도 그걸 드러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면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부모, 교사, 친구들조차 모를 수 있다’. 밖에서 어떻든 간에 집에서는 완벽하게 부모가 원하는 모습으로 있을 수 있고 그러다보면 내 아이를 가장 모르는 건 부모인 상황이 오기도 한다.(린양을 학교에 보내보니 학교에서는 입에 욕을 달고 사는 애가 집에서는 부모님에게 깍듯하게 존대말까지 써서 그 집 부모는 애가 학교에서 별명이 욕쟁이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더란. 나도 사실 린양이 학교나 외부에서 어떤 모습인지 백프로 확신은 할 수 없다.)

이 책은 ‘아이를 어떻게 키우라’고 가르쳐주는 책이 아니라 가장 최악의 결말을 맺은 엄마가 나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며 찢어지는 마음으로 자신의 경험을 공유한다.
아이가 나한테 ‘보여주는’ 모습에 안심하지 말고 항상 작은 사인도 놓치지 말라고, 아이에게 사회를 살아가는데에 필요한 예의를 가르치는 것도 필요하지만 아이 자신의 ‘정신에 깃드는 고통’을 무시하지 않도록 가르쳐주라는 거듭되는 메시지에 다시 한번 바싹 정신을 추스르게 된다.

리틀턴의 모든 엄마들이 그랬겠지만 나도 아들이 안전하길 빌고 있었다. 그런데 뉴스에서 스물다섯명이 죽었다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나는 다른 기도를 했다. 딜런이 다른 사람들을 다치게 하거나 죽이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면, 멈춰야 했다. 엄마로서 가장 힘든 기도였지만 그래도 그 순간 내가 바랄 수 있는 최대의 자비는 내 아들의 안전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것을 알았다.

p.52

딜런을 키우는 일은 끝났다. 이 아이를 만들어내는 데 들였던 모든 사랑과 노력이 끝이 났다. 가장 비참한 방식으로.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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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sponses

  1. 조금 다르지만, 난 어제 이 기사 읽고 좋았음…
    https://goo.gl/UfGF3o

    1. Ritz

      어제 안 그래도 저 기사도 봤었지. 저 기사랑 저 책이랑 뭔가 다르지만 통하는 이야기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