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작년에 개봉해서 흥행했던 영화 ‘극한직업’에서 등장인물 중에 테드 창이 나온 이후로 이 이름만 들으면 ‘창식이‘라는 이름이 먼저 떠오르는 부작용이 생겼다.(…)

아무튼 정말 오랜만의 신작.
여전히 우아하고 한편 한편이 빛나는 한 권이었는데 중간에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가 들어가서 실제로 신작 분량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은 아쉽고 이번에도 역시나 나는 이 작가 책의 표제작이 가장 덜 재미있는 것 같다. -_-; (당신 인생의 이야기 때도 그 단편이 제일 읽기가 어렵더란)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우리가 해야 할 일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데이시의 기계식 자동 보모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거대한 침묵
옴팔로스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목차

가장 재미있게 읽은 건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과 마지막의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몸에 장착한 개인 카메라로 자기 삶 전체를 연속적으로 기록하는 라이프로그를 유지하는 시대. 데이터는 계속 쌓이지만 정작 검색이 효율적이지 않아서 앨범과 같은 목적으로만 쓰이다가 신종 검색 툴인 리멤(Remem)이 등장하면서 원하는 검색어만 넣으면 필요한 영상을 언제든지 열람할 수 있는 세상이 열렸다.

주인공은 이 리멤으로 인해 변화하는 세상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그에 대한 기사를 준비하기위해 직접 사용하다가 정작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것과 실제 당시의 상황이 크게 다를 수 있다는 점에 당황하게 되고… 이 리멤이 과연 부정적이기만 한 건지, 아니면 다른 의미로는 유용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요즘은 무슨 일이 일어나면 근처의 블랙박스든 누군가의 SNS든 우연히라도 ‘기록으로 남기 쉬운 세상’이다보니 지금보다 아주 약간 한 발짝만 더 나아갔을 때 생길 수 있는 여러 상황에 대한 상상도 재미있었고 거기에 ‘육아’ 이야기가 가미되니 아무래도 공감할 부분이 많았다.
내가 지금까지 혜린이를 키우면서 기억하고 있는 것들을 실제 그때의 영상과 비교한다면 얼마나 정확하다고 할 수 있을까…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끊임없이 평행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고 있지만 그럼에도 계속 보게 되는 건 같은 베이스로 각자 다 다른 설정과 주제, 재미를 만들어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번에도 미디어의 아브라카다브라와도 같은 양자역학이 만든 또 하나의 평행세계에 대한 이야기.

프리즘(플라가 세계간 신호 메커니즘)이라는 기기가 등장해 새로 분기된 두 개의 시간선─빨간 등이 켜지는 쪽과 파란 등이 다른 한 쪽─을 만들어내고, 이 두 평행우주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렇다고 이것이 두 세계를 이어주는 무전기는 아니고 두 갈래의 우주가 공유하고 있는 메모패드에 가까워서 메시지를 하나 보낼 때마다 그 메모패드는 한 장씩 뜯겨나가며 그게 끝나면 두 세계는 영원히 연락이 끊기고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인간이 어떤 상황에서 하나의 선택을 하면 동시에 그 반대편을 선택한 ‘나’와도 접촉할 수 있게 되는 건데, 만약 그럴 때 나머지 선택을 했던 다른 평행세계의 내가 좀더 좋은 결과를 향해 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건 생각보다 가혹하다.
더불어 그렇게 여러 분기점으로 만들어지는 여러 세계의 내가 같은 상황에서 각자 다른 판단을 내렸다면 이미 그걸 모두 ‘나’라고 할 수 있을까. 거꾸로 모두 같은 ‘나’라면 아주 완전히 다른 선택을 하는 ‘나’는 존재할 수 있을가.

이 작가의 작품에서는 언제나 그 상황에 대한 ‘많은 예시’와 ‘다양한 의견’, 한쪽이 옳다고 치우치지 않는 ‘균형’을 읽을 수 있어 즐겁다.

넷플릭스의 LOVE, DEATH & ROBOTS이 반응이 좋았는지 2기 제작에 들어간다는데 쓸데없이 사람 썰고 벗기지 말고 이 책이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주면 좋겠다. =_=

by

/

5 responses

  1. 올 초 개봉영화인디요..

    1. Ritz

      검색할 때 제목 옆에 2018만 보고 작년이라고 했는데 개봉일은 올해 초였네요. 저는 한참 지나고 케이블로 봤거든요. : )

  2. 어우. 읽어야 할텐데.

    1. Ritz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아무래도 소장용으로 사야할 거 같심.

      1. 아. 창식이 형님 책은 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