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테드 창 작품 중에 마치 뭐에 홀린 마냥 매번 집중을 못하고 읽다 말았던 작품이 ‘당신 인생의 이야기’ 안에 있는 ‘네 인생의 이야기’였는데(최근 작품인 ‘숨’도 ‘소프트웨어 객체 주기’도 그렇고, 이 책의 다른 단편들조차도 다 그럭저럭 재미있게 봤는데 이상하게 이것만 읽어도 진도가 안 나가서 나랑 무슨 마가 꼈나 싶을 정도 -_-) 딱 그걸 원작으로 한 영화가 나왔다길래 개봉 당시에 잠시 눈여겨 봤었다. 영화 평도 좋았는데 그새 잊어버렸다가 오늘 문득 넷플릭스 업데이트에서 발견하고 혹시 화면으로 보면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싶어졌다.

그리고 영화는 지금까지 본 중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만큼 훌륭하게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이었다.(아직 원작을 다 읽지 못해서 차이를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영화는 단숨에 다 봤으니 잘 만든 것 아닐까…; )

아이를 낳고 나니 영화든 혹은 뉴스든, 갑작스러운 사고나 다른 이유들로 아이를 잃는 부모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보기 괴롭다. 그래서 영화의 중반부를 넘어갈 때까지도 ‘미래를 알면서 직진하는’ 주인공을 보며 왜 피하지 않는지 안타깝다가 후반에서 문득 가슴을 치듯 한번에 이해해버렸다.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시간이 쌓여갈수록 아이를 잃는다는 건 행여 그 아이의 머리카락으로 똑같은 클론을 다시 만든다 한들 완전히 대체하거나 위로할 수 없는, 무엇으로든 그 아이를 대체하려고 했다는 것만으로도 다시 죄책감에 괴로워질, 그저 막막한 상실이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루이스는 ‘예언자’처럼 미래를 ‘본’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경험’했고, 그렇다면 그럼에도 그 길을 아프지만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조용한 시간에 혼자 차분히 보고 나면 왠지 한참 동안 시간과 사람에 대한 생각에 잠기게 되는 실로 우아한 영화였다. 어떻게 SF에 이런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까.

아마도 이 작품이 2019년 마지막 영화, 2020년 첫 책은 다시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될 듯.

“전쟁에 승자는 없다.
미망인만 생길 뿐”

2 responses

  1. 저는 소설에서 잘 느끼지 못하던 감정변화를 주인공 표정의 변화를 보고 따라갔어요. 덕분에 소설보다 영화가 더 다가왔어요.

    1. Ritz

      영화를 본 다른 지인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생각해보니 책으로 읽을 때는 외계인 언어체계에 주인공의 미래, 이야기 진행까지 전부 글로 봐야해서 버거웠나봐요. -_-; 영화 보는데 외계인이 휙휙 문자를 그리니 어찌나 후련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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