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2000.09.07

제목만 들어서는 영락없이 전공서적쯤 되어보이는, 그러나 실제 장르는 소설인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는 일단 도서관에 도서 신청을 넣어봤는데 생각보다 빨리 들어왔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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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한 책들이 들어오면 도서관 사이트 공지에 이렇게 신청자와 책 제목이 정리되어 올라오는데 역시나 근처 사는 언니가 이름이랑 책 제목을 보고 전공 서적을 신청한 건가(나는 저런 전공 서적은 봐도 모르긔…) 했다시네요. 사람 낚기 참 좋은 제목이에요…; 

보통 가상 현실, 게임 등을 소재로 하는 작품들은 가상 현실 혹은 실제 현실 안에서의 ‘사람’들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던 듯한데 이 책은 디지언트와 그 디지언트를 키우며 관계를 쌓아간 인간의 관계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한 작품이었어요. 

내내 등장하는 전문적인 용어를 딱히 모르더라도 인터넷 공간에서 게임 캐릭터 혹은 하다못해 방명록에 사람들이 글을 남기는 자기 홈페이지라도 공들여 가꿔(?)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몰입하며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읽으면서 예전에 NDS를 장만하고 맨 처음 산 소프트(그게 제일 유명하다고 해서…)였던 닌텐독스가 생각나더라구요. 개나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을 전혀 키워본 적이 없어서인지 보살피고 놀아주고 가르치는 일련의 과정이 서툴어 생각보다 재미도 없었고 그래서 게임을 안 하고 있으니 마치 산 것을 방치하고 있는 듯한 찜찜함이 들더라고요. 그때 닌텐독스 안의 내 강아지에 좀더 정을 붙였더라면 아마 이 작품 안의 애나에게 훨씬 공감했겠지요.

계속해서 변화하는 소프트웨어 업계의 흐름에 대한 서술도 공감가면서 흥미롭고 가상세계 안의 존재를 육성하는 이야기임에도 따뜻하고 어떤 면에서는 절박하기까지 합니다. 결국 무언가를 ‘키운다’는 면에서 ‘육아’와 다를바 없고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다보니 내내 그 관점에서 몰입하며 읽을 수밖에 없었어요. 

이 책은 북스피어의 ‘에스프레소 노벨라’라는 레이블로 나오는 작품이었는데 이 책이 SNS를 타고 입소문이 돌면서 이 레이블의 다른 책들도 판매가 덩달아 조금씩 오르고 있다는 글을 봤습니다만 저는 이 레이블의 다른 작품보다는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하네요. : )

전직 동물원 조련사인 애나는 신생 게임 회사인 블루감마사에 취직한다.
블루감마사는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은 사교 게임인 ‘데이터어스’에 가상 애완동물(virtual pet)인 디지언트를 제공하는 회사인데, 애나는 백지 상태의 디지언트를 교육시켜 인간 사회의 언어와 지식, 사회성을 익히도록 훈련하여 ‘팔릴 만한 상품’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디지언트는 오너의 애정을 갈구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고 애나는 디지언트를 가르치며 마치 아이를 키우는 것과 같은 애정을 느끼게 되는데…
하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소프트웨어 업계의 생태계에서 디지언트는 끊임없이 존속의 위협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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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responses

  1. 컴퓨터 관련서적에 분류되어 있었다는… 전 회사 도서관을 통해 지난 주에 봤어요 ㅎㅎ

    1. Ritz

      제목만 봐서는 도저히 소설이라고 알 수가 없어요..; 표지도 별로 소설스럽지(?) 않고요;;